北 문제 제기하면 공동어로 수역 제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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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06면

남북 간 서해상 해상경계선인 북방한계선(NLL) 문제의 향방은 이번 정상회담의 초미의 관심사다. 북한이 NLL 무력화를 꾀해온 데다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하려면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은 13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나와 “이번 정상회담에서 원하든 원치 않든 NLL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이 새로운 해상경계선 설정 등 NLL 문제를 꺼내면 논의할 수 있다는 의미다.

포인트 ② NLL 어떻게 되나

정부는 NLL에 관한 전략을 단계적 접근법으로 정리했다고 정부 관계자가 말했다. 북측이 NLL 문제를 제기하면 평화공동수역(공동어로수역) 조성을 제의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NLL을 대신할 새 해상경계선 설정을 제기하면 남북 국방장관회담으로 넘긴다는 복안이다. 그래도 NLL을 책임지고 있는 국방부는 걱정이다. 김장수 국방부 장관이 정상회담 수행원에 포함된 것은 NLL 문제가 정상회담에서 돌출될 경우에 대비해서라고 한다. NLL에 관한 정부 차원의 입장이 정리됐다지만 국방부와 청와대ㆍ통일부의 사이에 온도차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은 이 틈새를 파고들 수도 있다고 국방부 측은 우려한다.

해상 평화공원 VS 공동어로수역
남북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NLL 문제의 1차적인 해결방안은 공동어로수역 설정이다. 서해 북방의 소청도와 연평도 사이에 공동어로수역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동어로수역에 대한 남북의 생각에는 차이가 있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은 NLL 남쪽의 우리 해역에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자고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측은 NLL 북쪽 해역이 좁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NLL을 중심으로 남북이 각각 일정한 크기(가급적 같은 면적)의 해역을 할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조성렬 신안보연구실장에 따르면 북한은 NLL 남쪽에 새 군사분계선을 설정해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 실장은 “북한이 NLL을 인정한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군사분계선과 NLL 사이의 해상에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는 방안이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NLL 밑쪽으로 공동어로수역을 조성하면 우리 어민들의 반발도 우려된다. 또 북한이 주장하는 새 군사분계선을 정부가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공동어로수역에 대한 국방부의 생각은 좀 더 까다롭다. 남북이 공동어로수역을 조성할 경우 NLL 이남 우리 해역에서의 관할권이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군 고위관계자는 “관할권은 북한 어선이 NLL 이남의 공동어로수역에 들어오면 우리 해군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라며 “이런 조건이 충족되면 공동어로수역 조성을 위해 남한이 더 넓은 해역을 제공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의 공동어로수역에 대한 관할권 주장은 북한의 노림수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통일연구원 정영태 실장은 “북한의 NLL 불인정은 현재의 정전체제 상황을 바꾸기 위한 전략”이라며 “NLL을 설정한 유엔사의 정전체제 관리 기능과 한·미 연합체제에 혼란을 몰고오려는 속셈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정부는 서해 해상경계선 설정에 대해서는 군사 핫라인 구축 등 남북한 사이의 전반적인 군사적 신뢰 구축과 연계해 검토돼야 한다는 입장도 갖고 있다.

NLL은 실효적인 해상경계선
군 내부에선 NLL을 휴전 이후 우리의 군사력과 장병들의 희생으로 지켜온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국가 사이의 경계선이라기보다는 군사적인 차원에서의 해상경계선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NLL은 1953년 8월 마크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의 작전 지시에 따라 설정됐다. 유엔군 측과 북한군이 서해상 분계선 설정에 합의하지 못한 채 53년 7월 정전협정이 체결되자 클라크 사령관은 우리 측 해군이 정찰·초계할 수 있는 북방한계선을 작전적 차원에서 설정했다.

당시 북한은 해군이 전무한 상태로 유엔군이 동·서해를 장악하고 있던 상태였다. 유엔사는 유엔군이 장악하고 있던 도서 일부를 북한에 내주었다. 백령도와 연평도 등 5개 도서만 유엔사 관할하에 두고 이들 섬을 보호할 수 있는 정도로 NLL을 그었다.
이에 대해 북한은 73년부터 서해 NLL을 부정하며 침범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NLL은 남북한 군 사이에 첨예한 ‘기싸움’의 현장이 됐다. 99년 6월 연평해전과 2002년 6월 서해교전도 그 결과다. 연평해전에선 우리 해군이 완승을, 서해교전에선 우리 고속정이 침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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