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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지금 8대 혁명 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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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26면

[연세대=최승식 기자]

미국 정치학계의 저명한 원로 루돌프 교수 부부가 20일 연세대학교 언더우드 국제대학에서 ‘인도의 이해’란 강연을 했다. 두 사람은 비교정치와 정치사상, 특히 인도 정치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으로 꼽힌다. 이번 강연은 ‘글로벌 아시아’(편집장 문정인)를 발간하는 동아시아재단(이사장 정몽구)이 주최한 CEMA(동아시아협의회) 세미나 프로그램. 다음은 강연 요지.

로이드 루돌프 & 수전 회버 루돌프 로이드 루돌프 & 수전 회버 루돌프

미국인들처럼 한국인들도 인도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할 것이다. 인도는 매우 중요한 나라다. 인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도울 수 있는 강연을 하게 돼 기쁘다. 1947년 독립 이후 인도의 변화는 크게 여덟 가지로 요약된다.

1. 브라만(Brahman)에서 수드라(Sudra)로

인도는 사회 혁명 중이다. 사회의 중심세력이 ‘브라만’에서 ‘수드라’로 옮겨가고 있다. 인도의 전통 계급(카스트)은 크게 네 부류, 즉 성직자(브라만)·무사(크샤트리아)·평민(바이샤)·천민(수드라)으로 나눠진다. 실제로는 수드라보다 훨씬 천대받는 불가촉천민(달리트) 등 수많은 계급이 존재한다. 57년 처음 인도에 갔을 당시 고위직은 대부분 브라만 출신이었다. 그러나 요즘 고위직에 수드라들이 대거 진출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Affirmative Action)가 도입되었을 뿐 아니라, 수적으로 많은 하층계급들이 정치적으로 주권의식을 갖고 투표권을 행사하면서 국회의원 등 선출직에 많이 진출했기 때문이다.

2. 국가에서 시장으로

인도가 사회주의 국가에서 시장경제 국가로 바뀌고 있다. 인도는 초대 네루 총리 시절 사회주의적 ‘계획 경제’를 실시했다. 소련처럼 국가에 의한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투자가 진행됐다. 정부가 생산을 통제했고, 사기업들은 정부의 허가 없이 주요 의사결정을 할 수 없었다.

이러한 정책은 91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급변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외채를 갚지 못하게 됐고, 계획경제를 이끌어갈 예산도 모자랐다. 때마침 사회주의권 붕괴로 계획경제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다. 시장경제로의 전환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사람은 현 총리 만모한 싱이다. 91년 재무장관으로 경제자유화 프로그램(신산업 정책)을 주도했다. 비교적 성공적으로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 최근 9%대의 성장세를 보이며 중국과 함께 세계경제를 이끌어가는 양대 축이 됐다.

인도의 경제성장은 중국과 비교해 몇 가지 점에서 더 주목할 만하다. 중국은 수출 의존도가 높지만 인도는 내수기반이 탄탄하다. 중국에 비해 젊은 인구가 많아 노동력이 우수하다. 젊은층에 의한 정보기술(IT) 혁명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인도는 중국보다 더 성장잠재력이 크다.

3. 1당 우위 체제에서 다당 체제로

인도는 독립 직후 사실상 1당 체제로 출발했다. 국민회의당이 압도적인 우위로 장기 집권했다. 간디와 네루가 이끌어온 독립운동의 전통을 이어받은 국민회의당은 늘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다. 이런 정치 상황은 89년 국민회의당이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장기 집권에 식상한 여론이 돌아서면서 처음으로 연립정권이 탄생했다. 사실상 다당제가 시작됐다. 국민회의당과 BJP당, 그리고 힌두민족당이 3대 정당으로 연정에 참여해왔다. 다당제 연방국가 체제인 셈이다.

4. 세속주의에서 힌두 민족주의를 거쳐 다시 세속주의로

세속주의는 곧 네루 총리로 대표된다. 힌두 민족주의는 BJP당으로 대표된다. 네루는 47년 독립 이후 64년까지 17년간 국민회의당을 이끌며 집권했다. BJP는 상위 카스트에 속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된 정당으로 반(反)이슬람 정책으로 힌두 민족주의를 자극해온 대중정당이다. 인도는 기본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민주국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좀 다르다. 간디 암살범은 이슬람 포용정책에 반대해 살인을 했다. 갈등의 내연에도 불구하고 네루는 집권 중 종교 문제를 잘 관리했다. 92년 종교분쟁이 격화됐다. 힌두 과격파들이 아요디아 회교사원을 파괴하면서 보복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덕분에 BJP당이 득세, 96년 이후 6년간 집권했다. 그러나 2004년 총선 이후 실권했다. 다시 세속주의로 돌아갈 것으로 주목된다.

5. 금욕주의에서 소비주의로

문화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소비주의의 등장이다. 인도는 원래 간디가 가르친 금욕주의를 실천해온 국가다. 대표적인 생활철학이 스와라지(자치)다. 스스로의 욕망을 통제하는 절제,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는 자급자족의 정신이다. 간디의 소박한 삶은 독립 후 국민회의당을 통해 계승, 확산됐다. 이런 흐름은 시장경제의 확산으로 바뀌고 있다. 아직 간디의 정신과 전통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높지만 온갖 상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6. 중앙집권적 연방주의에서 민중 주권주의로

독립 후 인도는 중앙집권적 연방주의로 출발했다. 네루식 중앙집권주의다. 이와 대조되는 정치철학이 간디로 대표되는 민중 주권주의다. 간디는 지방의 부락 단위로부터 형성된 자치권력이 중앙을 받쳐주는 풀뿌리 민주주의론자였다. 네루의 통치 기간 중 간디식 민중 주권주의는 힘을 얻지 못했다. 91년부터 달라졌다. 중앙집중적인 계획경제가 무력화되면서 정치경제적 지방자치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7. 농업에서 IT로

과거 인도의 상징은 우마차였다. 오늘날 인도의 상징은 월드와이드웹이다. 인도는 IT 혁명의 핵심국가다. 인도의 IT 기업은 세계경제의 견인차가 되고 있다. 명문 인도공대 졸업생의 절반은 미국 실리콘밸리로 취업한다.

8. 비동맹주의에서 세력 균형자로

네루는 제3세계 중심의 비동맹을 만든 사람이다. 비동맹주의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양분한 미국과 소련 어느 블록에도 속하지 않는 그룹을 형성,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치자는 전략이다. 이 전략 역시 91년을 고비로 급변하고 있다. 요즘 인도는 ‘세력 균형자’라는 적극적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최근 미국과의 관계를 보자. 2005년 싱 총리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협력 강화에 합의했다. 냉전의 승리자인 미국과 함께 가야 한다는 대세론이다. 그러나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인도가 상하이협력기구에 참여한 것은 미국과 맞서는 움직임이다. 러시아·중국과 발맞추는 군사협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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