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KAIST의 교수 철밥통 깨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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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얼마 전 정년 보장 교수를 선발하면서 신청자 35명 가운데 15명을 탈락시켰다고 한다. 교수들의 안정적인 연구를 보장하는 이 제도는 모든 대학에 있지만, 대부분 연구성과보다 연공서열로 선발했다. 그러나 KAIST가 업적 평가를 대폭 강화해 보니 대체로 젊은 교수들은 선발된 반면 50대 교수들은 다수 떨어졌다는 것이다. 잘못된 구습을 깬 획기적인 개혁 조치였다.

우리 대학의 국제 경쟁력은 세계 12위인 국가 경제력에 비해 너무나 한심스럽다. 세계 100위권 내 대학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대학들은 빈약한 재정·정부규제 등을 이유로 든다. 일리는 있지만 대학의 책임도 크다. 대학 경쟁력은 연구력에서 나온다. 그러나 적당히 노력해도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정년이 보장되는 현실에서 과연 누가 열심히 연구할까. 대선 때만 되면 연구·교육은 뒷전에 두고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폴리페서’(polifessor·정치 교수)들이 판을 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남표 KAIST 총장은 세계적인 대학이 되기 위해선 ‘내부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번 맞는 말이다. 아무리 외부 환경이 좋아도 안이 썩었다면 도태한다는 것이 진리다. 그래서 흥하는 집단일수록 스스로에게 엄격하다. 미국 하버드대는 교수의 20%에게만 정년을 보장한다고 한다. 반면 우리 대학은 논문 표절, 학력 위조 의혹 등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너무 관대하다. 많은 국립대 교수들은 국립대 법인화에 반대한다. 그 이유는 경쟁이 싫고, 철밥통을 원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서울대 등 일부 대학들도 최근 연구·강의 평가를 강화하는 등 개혁에 착수했다. 그러나 시작에 불과하다. 옥석(玉石)이 뒤섞여 있는 곳에선 경쟁력이 생길 수 없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쫓아내기 때문이다. 인간사회란 본래 그런 것이다. 그래서 대학도 경쟁원리를 도입하고 내부 개혁에 나서야 한다. 열심히 공부하는 교수들이 있어야 대학과 국가 경쟁력이 커진다. KAIST를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