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히 불안해하지 말자(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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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쟁의 가능성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 꽤 퍼져있다.정부가 이를 진정시키려 나서고 있으나 많은 국민들은 여전히 불안감을 씻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현재로선 동요할 필요가 없다.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북한제재 결의,유엔 안보리의 1단계 경제제재 검토와 이에 대응한 북한의 IAEA 탈퇴,경제제재의 선전포고 간주 등일련의 사태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은 틀림없다.그러나 길게 볼 때 이런 것들은 협상을 이끌어내기 위한 수순이지 전쟁으로 다가서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국민이 과잉불안감에 빠지게 된데는 정부쪽의 책임이 크다.국민들이 평온한 일상을 즐기자 정부당국자와 비중있는 여당인사들이 다투어 나서 이를 「안보부감증」으로 몰아 세웠다.그런데 쌀이라도 몇가마 들여놓으려 하니까 이번엔 「과잉불 안」이라고 나무란다.그러면서 15일에 실시된 민방위훈련에서는 해묵은 전시행동 요령을 내놓아 15∼30일간의 비상식량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어떻게 하란 말인가.
북한 핵문제에 대한 정책의 큰 줄기도 오락가락했다.언제는 대화에만 매달리는것 같더니 이제는 제재일변도다.북한이 「불바다」니,「황폐화」니 하는 극한 용어로 위협하자 우리 쪽에서도 「평양점령」이니,「파멸」이니 하는 용어로 맞섰다.
국민의 불안감을 고조시키는데는 언론도 크나큰 몫을 했다.외국언론들은 뉴스경쟁에 매달려 한반도상황이 전쟁일보직전인양 과장보도를 일삼았고,국내 언론들도 이를 거르지 않고 보도해 국민들을 자극한 측면이 있다.정부도,언론도 이러했으니 국민들이 불안감을 갖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이다.
이제 정부는 중심을 잡아야 한다.무엇보다 과장된 극한 용어의 사용을 삼가야 한다.제재를 하더라도 조용히 내실있게 추진해야지 말만 요란한 것은 국민을 불안하게 해 오히려 북한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빚을 염려가 있다.
미국이 갖고 있는 정보나 움직임도 정확히 파악해 그 흐름을 국민에게도 알려주어야 한다.안보리제재쪽으로만 가는가 싶더니 느닷없이 8자회담이 구체화되고 카터전미대통령의 방북이 이뤄지는등 국민들로선 갈피를 잡기 어렵다.과연 정부는 이러 한 흐름과 변화를 사전에 정확히 알고나 있었던가.
국민도 냉철해져야 한다.우리의 생활필수품 비축량과 생산능력에 비추어 만의 하나 극한상황이 전개된다 해도 사재기의 필요성이 별로 없다.또 교통사정으로 보아 피난을 가려야 갈 수도 없고,특별히 안전한 곳도 따로 없다.그렇다면 어느정도 긴장감을 갖더라도 생업에 더욱 충실하는 것이 전체로서 위기의 가능성을 줄이는 일이 된다.적어도 우리가 위기를 스스로 증폭시키지는 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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