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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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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중국의 도시에서 노래방을 가면 한 가지 즐거움이 덧붙여진다. 아주 오래된 가사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덩리쥔(鄧麗君) 등 내로라하는 유명 중국 가수들이 불렀던 ‘그저 이 삶이 오래 이어졌으면(但願人長久)’이라는 노래다.

그 노랫말은 중국 역대 문단을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북송(北宋) 때 소식(蘇軾)의 작품이다. 931년 전 정치권에서 밀려난 그가 멀리 떨어져 있는 동생 소철을 그리며 지었던 사(詞)다. 900여 년 전의 가사가 그 뜻 그대로 전해지는 것은 표의 문자인 한자(漢字)의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추석에 술을 마시며 밝은 달을 쳐다 보다가 그는 동생을 떠올린다. “달님이 있은 지 얼마런가/ 잔을 집고 푸른 하늘에 묻는다(明月幾時有, 把酒問靑天:이하 지영재 편역 『중국시가선』 참조).” 서두는 당나라 시인 이백의 작품 ‘술잔 잡고 달에 묻다’를 패러디한 것이다.

본인을 이백의 경우와 같이 인간 세상에 유배 온 신선으로 자부하던 소식은 “나도 바람을 타고 (달에) 돌아가고 싶다만…높은 곳이라 추위를 이기지 못하겠기에(高處不勝寒)…어찌 인간세계에서와 같을까(何似在人間)”라고 운을 뗀다.

“(달님이) 붉은 누각을 돌아/ 비단 방문을 기웃/ 잠 못 드는 이를 비춘다”는 대목에서 그는 동생, 나아가 그리운 이 모두를 생각하는 아련함에 젖어든다. 왜 달이 둥글어 가득 찰 때, 사람들은 늘 헤어짐을 생각할까. 보름달을 보고 자연스레 차오르는, 멀리 있는 이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가 이어진다.

이 작품의 백미는 다음에 있다. “사람은 슬픔 기쁨 헤어짐 만남이 있으며/ 달님은 흐림 맑음 참 이지러짐이 있다(人有悲歡離合, 月有陰晴圓缺)”는 것이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에 사람 세상의 만남과 이별을 붙였다. 그 다음엔 “두 가지 모두 어울리기는 예로부터 어렵다(此事古難全)”고 했으니 슬픔 뒤의 기쁨을 기다려 보자는 자세다. 소식의 작품이 내포하는 뜻은 이를테면 인생에 대한 긍정이다. 자연에 비기면 덧없어 보이지만 나름대로 삶을 즐기자는 여유를 담고 있다.

이제 달이 기울고 있다. 추석 명절을 쇠고 귀경길에 오르는 데는 고단함이 앞설 것이다. 귀성이 즐거움이었다면 귀경은 피곤함이겠다. 그래도 기운 달이 다시 차듯 즐거움이 또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유장한 자연 앞에 견줘 보는 사람 사는 세상의 재미다. 긴 연휴 뒤에 맞는 피로감을 이렇게 달래 보자.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