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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궁합도 바뀐답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8호 14면

“선생님, 저를 고치겠다는 기대는 하지 마세요.”

이혼을 말리는 부모의 성화에 마지못해 필자를 찾았다는 T씨. 그는 자신의 문제는 아무도 고칠 수 없다며 오히려 그의 부모를 설득해 달라고 했다.

“아내 앞에서는 전혀 발기가 안 됩니다. 궁합이 안 좋다며 결혼 전에 부모가 반대하는 데도 제가 좋아서 결혼했는데…지금 후회막급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내 몰래 일회성 바람도 피웠다. 그런데 그때는 발기가 잘 되었다. 자위할 때도 잘 되는데 유독 아내 앞에서만 안 되니 그는 아내와 자신의 속궁합이 맞지 않아서 그렇다며 이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특정인이나 특정 상황에서 발기가 안 되는 경우를 ‘상황성 발기부전’이라 한다. 만약 실제로 신체적인 문제가 있다면 상황과 관련없이 발기가 안 될 것이다. T씨의 검사 결과도 실제 성기능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T씨처럼 특별한 신체적 문제가 없는 심인성 발기부전은 40대 이전 남성 발기부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데, 제대로만 접근하면 아주 치료가 잘 된다. 무조건 발기유발제나 주사 등의 요법을 쓰는 것은 오히려 약에 대한 심리적 의존성만 키운다. 필자의 경우 심인성 발기부전으로 진단된 환자의 열에 아홉을 발기유발제나 주사 등의 요법을 쓰지 않고 자연 발기로 치료해왔다.

T씨는 완벽주의자에 성취욕이 대단했다. 매일 밤 자정이 다 되어서야 퇴근하고, 온갖 일을 도맡아서 처리했다. 경쟁에서 도태될까 봐 술자리도 절대 빠지지 않았다. 필자를 처음 만난 날도 T씨는 피로에 지쳐 눈자위가 충혈되고 벌겋게 달아올라 있을 정도였다.

퇴근길에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데, 그 상황에서 아내에게 성욕이 생기고 성반응이 나올 리 만무하다. 아내와의 잠자리도 일로 여겨져 부담이 컸다. 게다가 한 번 발기가 안 되니 또 안 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이 생겨 더욱 발기가 어려웠다. 침대에서조차 회사 일을 생각하는 T씨는 스트레스로 인해 성기능이 철저히 차단됐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아내와 속궁합이 맞지 않는다고만 한탄했던 것이다.

과로와 피로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성기능만이 아니라 자신의 건강 전체에 문제가 될 수 있다. 과로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퇴근 후에는 절대로 회사 일에 집착하지 않았더니 T씨의 건강이 조금씩 호전되었다.

치료 중반을 넘겨 만난 T씨의 아내는 필자도 깜짝 놀랄 만큼 상당한 매력을 가진 여성이었다. 아내의 성기능 또한 정상적이었다. 다만 T씨 부부는 서로 성흥분을 끌어낼 줄 몰랐던 것이다. 서로 팀워크를 이루며 성흥분을 즐겨야 하는데 그저 상대방이 제대로 자극해주지 않는다고 서로 네 탓만 했다. T씨 부부는 서로의 성감을 찾고 흥분을 끌어내는 훈련을 반복했다. 또한 각자의 성기능을 강화시키는 치료도 받았다.

“지금도 아내가 매력이 없어요? 여전히 이혼 계획엔 변화가 없습니까?”

치료를 끝내던 날 필자가 묻자 T씨는 계면쩍은 웃음만 짓는다.

“속궁합, 그거 바뀔 수 있다는 걸 미처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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