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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과 돈 아끼려면 서문을 읽고 판단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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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호 02면

책벌레로 소문나다 보니, 주변에서 어떻게 하면 좋은 책을 골라낼 수 있는지, 책을 잘 읽는 방법은 무엇인지 묻는 경우가 많다. 그럴 적마다 상투적이긴 하지만 “왕도는 없는 법”이라고 대답하게 되는데, 물어본 이들은 대부분 실망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무언가 대단한 비책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거나 소문만큼 대단한 사람은 아닌 모양이라 판단하기도 하는 듯 싶다. 하나, 그 분야에서 최고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느냐고. 아마도 대부분 “왕도는 없고 즐겁게 꾸준히 하다 보니 이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리라.

책 잘 고르고 잘 읽는 법

책읽기야말로 왕도가 없다. 사회가 발전하고 분화하다 보니 관심사도 다양해졌다. 전문가가 읽었다는 책이 반드시 자신에게 도움이 될 리 없다. 제도교육에서는 독서교육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책 읽는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전문가가 아무리 감동 깊고 의미 있는 책이라 해도 어려워서 못 읽는다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책을 정확하게 빨리 읽는 방법을 들었다 해도 곧바로 따라 할 수 없다. 교양의 높이가 같아야 동일한 방법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반복하거니와 왕도는 없다.

그렇다고 참고할 만한 도움말을 전혀 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책벌레가 되는 과정에서 겪은 여러 경험을 종합하면 얼추 그려지는 게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밑그림 정도일 뿐이지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재미 삼아 읽어보고, 창조적으로 활용하다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이 있다. 책을 읽어보면 안다. 잠깐, 성내지 마시길.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려는 바는 아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좋은지 나쁜지 결정하려면 너무 많은 시간이 든다. 시간을 절약하면서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이 있다. 먼저, 책의 표지에 실려 있는 글귀와 작가 소개를 읽어보면 된다. 물론 광고성 문구들이 가득 들어차 있어 눈이 부시겠지만, 잘 읽어보면 책의 주제와 강조점이 요령껏 정리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책인지 눈치채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아직 판단이 서지 않으면 목차를 볼 것. 그 두꺼운 책의 내용을 요약한다 해보자. 줄이고 줄이면 무엇이 남을까? 그 책의 골격인 목차만 남는다. 책에 목차가 있는 걸 요식행위로 보지 말라. 차분히 읽어보면 책 전체의 내용이 머릿속에 그려지니, 읽을지 말지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정도 시간을 들였는데도 아직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서문을 보면 된다. 물론 서문 가운데는 감사패를 늘어놓은 듯한 책도 많다. 그런 책은 안 보면 된다. 서문이란 본디 책을 쓰게 된 동기, 책에서 문제삼고자 한 주제의식, 그것을 풀어나가기 위해 부여잡았던 고민거리들을 함축적이고 상징적으로 풀어놓는 마당이다. 그러니, 읽어보면 대략 무슨 내용인지 짐작하게 된다. 읽어볼 만한 책인지 아닌지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게 마련이다. 서문은 그 책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다. 그런데 그 서문이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면, 속된 말로 볼 장 다 본 셈이다. 문제의식이 없거나, 주제의식이 애매하거나, 문장이 인상적이지 않다면 그 책은 돈 들이고 시간 들여 읽어볼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스스로 책을 골라내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이런 능동성이 쌓이다 보면 전문가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마냥 혼자 해낼 수만은 없다. 특히 평소 책을 멀리하던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적 자원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평소 주변에 책을 많이 읽는 친구를 사귀어 둬야 한다. 그 책을 썼거나 만들었거나 파는 사람이 아닌데도, 자발적으로 그 책이 좋다고 떠벌리는 사람의 말은 믿을 만하다. 더욱이 비슷한 연령으로 관심사도 같았다면 수준에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 주변에 술친구는 얼마나 많던가. 그렇다면 한번 눈길을 돌려보라. 주변에 책을 좋아하는 이가 있어 늘 좋은 책을 공짜로 소개받은 적이 있던가. 세상 살아가면서 많은 친구가 필요하지만 책 많이 읽는 이를 가까이 두는 것도 큰 복이다.

신문 북섹션도 큰 도움이 된다. 훈련받은 기자들은 책의 내용을 요령껏 줄여 말하는 데 능하다. 더욱이 그들의 촉수는 시대적 관심사에 맞닿아 있다. 책 많이 읽는 사람들에게 도킨스는 무신론자로 유명하다. 그가 『만들어진 신』을 쓴 것은 일견 당연하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읽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기자들은 다르다. 종교충돌의 시대에 유명한 과학저술가가 무신론을 공격적으로 말했다는 것에 가치를 둔다. 더욱이 선교활동을 나간 이들이 탈레반에 납치된 이후 한국 기독교의 공격적 선교에 대한 국민 여론이 악화됐을 때 나왔으니 주목하는 것이다.

인터넷 시대를 맞이해 활성화한 ‘서평 블로거’도 활용할 만하다. 한 인터넷 서점의 블로그에는 47만 개의 서평이 올라와 있고, 읽고 있는 책이나 권할 만한 책 정보가 15만 개나 등록돼 있다 한다.
서평 블로거는 연령별로는 30대가, 성별로는 여성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이는 어린이·실용서·소설 분야에서 믿을 만한 서평이 많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일반대중들이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책을 추려내고, 이에 대한 감상문을 실어놓았다는 점에서 책 고르는 데 도움이 된다.

먹거리를 보기만 해서는 영양에 도움이 안 된다. 먹어야 하는 법이다. 좋은 책을 골라냈다면, 잘 읽어야 한다. 책읽기에도 섭생법이 있다. 실용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볼 필요는 없다. 더욱이 같은 주제를 다룬 책을 몇 권 읽었다면 새로운 것만 골라 읽으면 된다. 중복되는 게 많은 탓이다. 대체로 서문과 결론만 봐도 무슨 내용인지 안다.

소설을 실용서처럼 읽어서는 안 된다. 꼼꼼하게 감정이입하며 읽어야 한다. 문학은 이른바 전작주의 독서법을 권할 만하다. 한 작가의 작품을 다 읽어보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작가의 독자적인 세계관과 오롯이 만날 수 있다.
인문서는 같은 주제를 다룬 서로 다른 경향의 책을 함께 읽어보는 것이 좋다. 특정한 입장만 강조하는 책을 읽어서는 균형 잡힌 시각을 확보하기 힘든 까닭이다. 권정관의 『지식의 충돌:책 vs 책』을 보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웰빙의 시대다. 너도나도 몸에 좋은 먹거리를 얻기 위해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신에도 최소한 그만큼의 노력은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왕도는 없지만, 방법은 있다. 꾸준히 책을 읽어나가며 방법을 바꾸다 보면 자신에게 딱 맞는 것을 찾아내게 된다. 그때 당신도 전문성을 얻게 된다. 책벌레가 자라 도서평론가가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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