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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당신은 神이 있다고 믿는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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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28호 07면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지음 l 이한음 옮김 l 김영사 l 604쪽

철학분야 추천도서

“경험할 수 있는 뭔가의 배후에 우리 마음이 파악할 수 없는 뭔가가 있으며, 그 아름다움과 숭고함이 오직 간접적이고 희미하게만 우리에게 도달한다고 느낄 때, 그것이 바로 종교다.”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종교적이다. "파악할 수 없는"이라는 말이 "영구히 파악이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조건을 달아야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종교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치명적인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까.
대다수 사람에게 종교는 초자연적인 것을 의미한다. 칼 세이건은 그런 상황을 멋지게 표현했다. “신이라는 말이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 법칙들을 의미한다면, 그런 의미의 신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 신은 정서적인 만족을 주지는 않는다. 중력법칙을 향해 기도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과학자가 말하는 비유적 또는 범신론적 신은 성서에 나오는 신, 즉 인간사에 간섭하고 기적을 일으키고 우리의 생각을 읽으며 죄를 벌하고 기도에 답하는 인격적인 신과는 아득히 멀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시대의 반석들』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학은 천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연구하고 종교는 천국에 가는 법을 연구한다.” 종교는 과학 너머에 있다는, 지겨울 정도로 진부한 말이다. 과학은 ‘어떻게’라는 질문들에만 관심이 있고, ‘왜’라는 질문들에 대답할 자격이 있는 것은 신학뿐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왜, 어떤 궁극적인 질문에 대해 과학이 대답할 수 없다면 종교는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어쩌면 당신은 불가지론이 합당한 입장이고, 무신론은 종교만큼이나 교조적이라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창조주 신(God)이 존재한다는 가설 역시 우주에 관한 과학적 가설 중 하나로서 다른 모든 가설처럼 회의적으로 분석돼야 한다. 아마도 당신은 철학자와 신학자가 신을 믿어야 할 타당한 이유들을 내놓았다고 배웠을 것이나 사실 그 논증들은 대단히 취약하다.

또 당신은 신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마치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다양한 종들을 자랑하는 생명과 이 세상이 어떻게 출현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생물세계에서 나타나는 설계라는 환각은 설계자가 있음을 방증하지 않는다. 이는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통해 훨씬 더 경제적이고 우아하게 설명된다. 게다가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에 필적하는 또 다른 이론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일깨워주고 싶은 사실은 자연선택설과 같은 이론들이 지닌 힘이다.

인류학자와 역사학자는 모든 문화권에 종교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어쩌면 당신은 이를 근거로 하나든 그 이상이든, 신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종교 또한 다윈의 자연선택의 문제에서 비롯된 진화의 부산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처음에 종교적인 욕구를 충동질한 자연선택의 압력들이 무엇이었는지 질문해야 한다.

선해지려면 신이 필요하며 종교가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신성한 경전인 성서의 권위에 집착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도덕을 성서로부터 이끌어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게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반면 일부 철학자, 특히 칸트는 비종교적인 근원에서 절대적인 도덕을 이끌어내려고 애썼다.

나는 특히 미국 독자들에게 할 말이 있다. 현재 미국의 광적인 신앙은 주목할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존 레넌의 노랫말처럼 “상상해보라, 종교 없는 세상을.” 자살 폭파범도 없고, 9·11도 없었을 것이다. 런던폭탄테러도, 십자군도, 마녀사냥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도, 유대인을 ‘예수 살인자’라고 박해하는 일도 없고, 고대 석상을 폭파하는 탈레반도, 신성모독자에 대한 공개 처형도 없다고 상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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