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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한총련출범 선언문을 보고-어른들의 경험을 들려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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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최근「韓總聯」대학생들의 주장을 보고 충격을 받은 시민이 하나둘이 아닐 것이다.
공산 종주국 舊蘇聯의 해체,동구 공산권의 몰락을 통해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이념이나 주체사상이 이제는 근로자.농민은 물론 대중에게조차 판매할수 있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였음이 너무도 분명해진 오늘『생활도,학문도,투쟁도 주체의 요구대로 밝혀내자』는 희한한 우화의 세계속에 사는 젊은이들이 우리사회에 있는 것이다.
일부 젊은이들의 이러한 이념 편향성이 韓總聯 출범 선언문에서갑자기 등장한 것은 물론 아니다.
80년대 중반 대학 지하서클인「구국학생연맹」(약칭 求學聯)의강령과 규약,건국대 점거농성사건의 주체인「애국투쟁학생연합」(약칭 愛鬪聯)의 각종 문건에서도 그들의 사상적 편향성,더 정확히말하면 북한 노선에의 추종은 명백히 드러난바 있다.
특히 金日成 주체사상에의 경도는 그 이후 8년여동안 계속 심화.증폭돼 지난해 전국 1백98개 대학 총학생회가 결성한 韓總聯에 와서는 극한에 이른 느낌이다.
이들은 대한민국 정부는 반통일세력인 미국의 식민지 대리정권인데 반해 북한은『주체의 위업을 견지하면서 사회주의를 건설중인 확고한 통일주체 역량』이므로『불퇴전의 기세로 반미.반정부 투쟁을 전개하여 연방제 통일방안 합의를 이룩하자』고 주장한다.소위「범청학련 남측본부」를 구성하고 국제전화등을 통해 북한의 학생조직인「조학위」등과 소위「범청학련공동 의장단회의」등을 개최하여연방제 통일 방안등에 합의하는등 극단의 편향성을 보이고 있다.
그들이 이렇듯 시대착오적인 이념의 포로가 된 이유를 일의적으로 끌어내기는 어렵다.
구태여 그들의 정신태도를 설명한다면 이른바「도덕적 엄격주의」또는「도덕적 이원론」으로 설명할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즉 서로 대립되는 2개의 현상,이른바 정의와 부정의,착취(자본가)와피착취(노동자),자주(북한)와 외세(남한)등으로 사물을 구분하고 그러한 주관적 결정에 의하여 채택된 도덕적 격률을 엄격하게추구하는 것이다.일단 이러한 심리 상태가 되면 적대적인 대상에대하여 민주주의적 게임규칙이나 과거의 전통적 가치등을 준수하는것은 어리석게만 보이고 그것은 곧 파괴와 절멸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독일의 교훈=독일도 60년대초 학생운동의 진통을 겪었다.이른바「억압과 착취」의 상징인 베트남 전쟁과 업적위주.
능률적 사고등 현대 산업사회의 현상에 대한 비판으로 출발하였던이 운동은 67년 6월 베노 오네조르크의 사망사건을 거쳐 68년 절정에 이르렀다가 1960년대말,1970년대 초에 이르러 점차 교조주의적.레닌주의적 경향을 띠게 되었으며 운동주체간에 자신의 노선에 대한 맹목적 절대성 표방으로 노선대립을 보이다 70년 3월 이 운동을 주도하였던 독일 사회 주의 대학생연합(SDS)의 해산으로 소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시대 어른들의 역할=지금까지의 수사경험을 통하여 이같은 교조주의의 오류를 극복하는 길은 거창한 구호나 반공이론이 아니라 바로 현실자체 또는 우리사회의 어른들이 겪었던 경험 자체를그들에게 진솔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런 면에서 최근에 읽었던 蘚于宗源 변호사의「사상검사」(계명사.93년),姜元龍 목사의「빈들에서」(열린문화.93),蔡命新 장군의「사선을 넘고넘어」(매일경제 신문사.94년)같은 회고록이개인의 생활기록 차원을 떠나 오류에 심취되어 있 는 젊은이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살아있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이 시대 어른들의 역할과 관련,마네 슈페르버를 인용하고 싶다.
그는 마르크스의 이론으로 추구되고 있는 완전 해방과 정의가 초래한 도그마티즘의 어두운 그림자를 경 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만일 새세대가 낡은 오류들가운데서 그들 자신의 독특한 진리를 발견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들에게는 어른들의 경험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그리고 새세대로부터 소외되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까 두려워해 그들에게 이러한 경험에서 얻은 식견 을 전달하는일을 포기하는 어른들은 이땅이 받아들일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다.』 우리사회를 지키고 발전시켜 오는데 더러는 목숨을 걸었고 모두가 땀을 흘렸던 우리 사회 어른들이 자신의 체험을 자신있게젊은이들에게 들려줄 용기와 성의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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