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세상보기] '의견'이 무슨 뜻인가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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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외국인에게 들은 농담 한 가지. 기자가 인도인과 싱가포르인에게 쇠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의견이 어떤지 물었다 (What's your opinion about eating beef?).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은 '소'는 알아도 '쇠고기'는 모르기에 "쇠고기의 뜻이 뭐냐"(What is beef?)고 반문했다. 싱가포르인 왈, "의견이라는 단어 뜻이 뭐냐?"(What is an opinion?)

싱가포르는 다방면의 적절한 정책 운용을 통해 성공적으로 경제 성장을 이룩해 왔지만 국민을 통제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로 인해 싱가포르에서는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것을 가져볼 기회가 많지 않다는 점을 풍자한 것이다. 만약 동일한 질문을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던진다면 싱가포르와 비슷한 대답을 얻지 않을까.

이번엔 미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때 우리나라에 돌아온 아이를 둔 친지의 이야기다. 아이가 학교에서 국어 시험을 보았는데, '거북이'와 '엉금엉금'을 이어야 하는 연결형 문항에서 '성큼성큼'과 짝짓기해 틀렸단다. 그렇지만 아이의 항변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그 집 어항에 있는 청거북이는 다른 물고기에 비해 빠르게 움직이기에 아이가 보기에 거북이는 천천히 기는 동물이 아니라 민첩하게 움직이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청거북이와 더불어 닌자거북이까지 언급하는 아이의 반론에 친지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시험에서는 '거북이-엉금엉금'으로 답해야 한다고 일렀다고 한다.

동화 '토끼와 거북이'에서 거북이의 관념을 형성하는 아이들에게는 '거북이'와 '엉금엉금'의 결합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빠르고 느린 것은 상대적 개념이며, 거북이에게는 '엉금엉금' 이외에도 여러 속성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단어들과 결합시킬 수 있다.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공인된 답을 똑같이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그 생각의 타당성을 따져 보고, 자신의 견해에 들어 있는 오류를 수정해 가는 과정이 아닐까.

우리나라 학생들이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에 이민가서 현지 학교를 휩쓰는 높은 성취 수준을 보였다는 성공담은 익히 들어왔다. 그러나 학교급이 높아질수록 한국에서 받은 교육의 약발이 약해지는지, 우리 학생들의 일취월장 소식은 점점 듣기 어려워진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창의성 교육의 부재도 한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다. 창의성 교육이 구두선에 그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다인수 학급에서 진행해야 하는 수업,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담긴 내용을 정해진 시간 안에 소화해야 하는 여유없는 수업, 객관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평가 등이 창의성 교육의 걸림돌이 된다.

일반인들이 창의성에 대해 오해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창의성이라 하면 돈키호테식의 엉뚱한 발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창의적 사고는 충실한 내용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명료한 논리적 근거 위에 가능한 것이다. 창의적 사고는 내용과 근거가 빈약하면서 그저 황당무계하기만 한 생각이 아니기에 창의성의 신장을 위해서는 사고의 기본 재료가 되는 기초적인 지식 습득이 전제돼야 한다.

창의성 교육은 거의 모든 교과에서 이뤄질 수 있다. 불변의 진리이자 가장 객관성을 지닌 지식으로 간주되는 수학 교과는 창의성과 관련이 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수학의 역사는 기존의 이론을 수정해 새로운 이론을 만드는 창의적인 사고의 역사였다. 수학 교과서에 네모박스 쳐진 공식과 알고리즘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해결 방안, 더 우아하고 경제적인 풀이를 생각해 내도록 독려하는 것, 학생 스스로 추측하고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따져 보면서 개선하도록 하는 것은 창의성 교육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너무 당연해 진부하게 들리기까지 하지만 다음 세대의 교육 수준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에, 창의성의 신장은 우리 교육의 화두가 돼야 할 것이다.

박경미 홍익대교수.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