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향기] 아들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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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영 장병 뛰어갓!" 소리와 함께 입영장으로 뛰어 들어가는 네 모습을 보고 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조교 사병을 따라 줄지어 들어가다 우리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던 네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한자리에서 마음 속으로 네가 정말 잘 해내기를 기원했다. 네가 논산 훈련소에 입소한 지 이제 일주일이 되는구나. 그날 아빠와 엄마는 집으로 오는 내내 뭔가 말할 수 없는 막연함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고, 웬 함박눈은 그리도 쏟아지던지…. 오늘도 그날처럼 하루종일 온 세상이 눈밭이다. 오늘은 일요일인데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혹시 눈 치우는 훈련을 하고 있을까.

입영식에서 대대장님이 입영 장병들의 애인과 여자친구들에게 준 당부 말씀-고무신 바꿔 신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군화를 바꿔신는다나, 어쩐다나. 그나저나 너는 편지 보내줄 여자 친구 하나 없어, 이렇게 엄마가 너에게 연애편지를 써야 하겠니?

너의 첫날은 어땠을까? '경석이의 병영일기'란 책에서 서경석씨가 훈련소 첫날 밤 담요를 덮고 소리없이 울었다는데 엄마로서는 정말 마음 아픈 대목이었다. 정말 너는 첫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늘은 아빠생신이란다. 기억하고 있을까. 생전 처음 동규가 함께 못하는 아빠 생신날, 미역국에 단출한 아침상을 놓고 너를 생각했다. 네가 있었으면 이러저러 했을텐데 하면서.

우리 세 식구가 같이 소파에 앉아 무릎엔 담요 하나씩 덮고 70, 80년대 팝음악을 함께 들었고 CGV에서 빌려본 수 많은 DVD 영화에 대해 얘기하며 즐거워하던 부자 간의 이쁜 모습이 정말 엊그제 같구나. 늦게 공부 시작하는 엄마의 수강신청을 걱정해 주고 자꾸 잊어버리는 엄마를 위해 입대전에 컴퓨터 포토샵 작동법을 메모해 놓은 점 고맙게 생각한다. 엄마도 앞으로 2년간 열심히 살아 너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다. 걱정스러울 정도로 군대에 대한 기대와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간 너이지만 세상살이가 그러하듯이 그곳도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는 공동체 생활이라 어려운 점도 많으리라 생각된다. 정말이지 너는 참고 인내하며 잘 이겨내리라 믿는다.

이제 너에게 진정한 의미의 마라톤 경주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인생과 세계를 보기 위해 대사건의 증인이 되고,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고 거만한 자들을 주시하자. 사랑에 대해 애기하고,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 혹은 벽 뒤에서, 방 속에서, 저 골목길 끝에서 벌어지지만 소리없이 우리를 위협하는 일들에 대해 우리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우리 천천히 조심스럽고 겸허하게, 몸은 가장 낮추되 정신은 약간 높은 곳을 바라보며 다른 이도 배려하며 살아보자. 파이팅!!!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

권태원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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