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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풍경] 하버드로 날아간 '라팔 청년' … 방학 맞아 귀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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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 최고의 영광은 한번도 실패하지 않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데 있는 법. 멈출 줄 모르는 꿈과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 늘 함께 한다면 최고의 날개는 누구에게나 돋아나리니-.'

지난 26일 오후 충북 청주에 있는 공군 ○○기지.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을 시샘하던 추위가 아직 직성이 다 풀리지 않았음인지 살을 에는 짓궂음이 여전한데, 한눈에 보아도 훤칠한 한 젊은이가 F-4 팬텀기에 오른다. 이윽고 엔진에 시동이 걸리고 활주를 시작하는가 싶더니 이내 웅장한 굉음과 함께 창공으로 빨려 들어간다. 하늘을 뚫을 듯 솟구치던 기체가 수평을 이루자 몇 조각 안 되는 구름 사이로 내리꽂히는 석양이 태극마크를 붉게 물들인다. 눈 덮인 산야가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다. 순간 젊은이는 숨을 가다듬는다. 아, 이 얼마나 눈부신 조국이냐. 조종간을 잡은 손에 힘이 절로 들어간다. 초음속이지만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눈을 크게 뜨고 찬찬히 구석구석 짚어본다. 몇 바퀴 째인지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비행시간만 1시간 가량. 젊은이는 자신이 이 땅의 아들인 게 자랑스러웠다.

젊은이의 이름은 이원익(李元翼.28). 그는 공군조종사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고려대 영문학과 3년이던 2001년 파리국제에어쇼에 참가, 민간인 최초로 '프랑스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최신예 전투기 '라팔'을 평가비행한데 이어 지난해엔 우리 공군의 F-16을 몰았던 경력의 소유자로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던 바로 그 인물. 공군 전투기조종사였던 아버지에 의해 '최고의 날개[元翼]'란 이름으로 1976년 경남 사천비행장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전투기에 매료돼 조종사의 꿈을 키워온 '전투기 매니어'.

고교3년 때 갑작스러운 시력 저하로 공군사관학교 입학이 좌절됐지만 아픔을 딛고 일어나 그동안 쌓아온 전문가 수준의 항공기 관련 지식을 바탕으로 항공전문 저널리스트 등 '비행기 인생'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의지의 젊은이이다. 세계적인 항공산업 관련 에이전트가 되기 위해 현재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2년과정의 '공공정책(Master in Public Policy)'을 공부하고 있는 그가 방학을 이용, 보름 남짓 일정으로 귀국해 이번에 팬텀비행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비행의 목적은.

"저의 우상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전투기조종사예요. 그래서 늘 그분들을 위해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려고 궁리하곤 하죠. 지난해 기말고사 준비를 하다 하도 따분해 누워있는데 갑자기 비행의 역사에 대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든 지 1백년 되는 해였잖아요. 그러다 자연스레 전투기 쪽으로 생각이 돌면서 팬텀이 생각나는 거예요. 미국 보잉사 제품으로 전투기 사상 가장 많이 만들어졌던 '걸작'인데 벌써 단종됐죠. 그런데 그 마지막 생산분이 우리 공군에 있거든요.

순간 팬텀기의 역사성에 우리 공군조종사들의 우수성을 실으면 얘기가 되겠다 싶더라고요. 즉시 세계적인 항공전문잡지인 영국의 '에어 인터내셔널'에 편지를 띄우고 우리 국방부에도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한달반 만에 허락을 받았습니다. 아마 3월께 잡지 표지에 태극마크가 달린 우리 공군기의 모습과 함께 조종사들의 얘기가 실릴 겁니다."

아직 그리 길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삶은 가위 '기적'의 연속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지난해 9월 케네디스쿨에 입학을 앞두고 펴낸 자전적 글 '비상'(넥서스 북스刊)은 이 땅의 많은 젊은이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었다.

-하버드대에 가게 된 동기는.

"파리 국제에어쇼에 갔을 때예요. 눈앞엔 미국의 'F/A-18E 수퍼 호넷', 프랑스의 '미라주 2000-5', 스웨덴의 '그리펜', 러시아의 '수호이35', 유럽다국적 컨소시엄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등 세계 최강의 전투기들이 시범비행을 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공간에 수많은 항공기가 전시돼 있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전시장 옆에 마련된 미국의 '록히드 마틴' '보잉' '노스럽 그루먼' '레이시온', 프랑스의 '다소', 스웨덴의 '사브 에어로스페이스', 영국의 '비에이시스팀스' 등 굴지의 항공사 부스를 둘러보는 데 만 꼬박 3일이 걸렸을 정도로 첨단기술력의 각축장이었죠. 비록 전투기 조종사의 꿈은 접었지만 '비행기 인생'의 다른 측면을 발견한 겁니다. 대학생 신분으로 라팔을 조종한다는 사실에 많은 항공사 관계자 및 전문가들이 관심을 주었는데, 불현듯 이들과 어깨를 견주며 일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방법을 물었더니 하버드 케네디스쿨을 찍어 일러주더군요. 항공비즈니스란 게 특성상 국가차원의 일이라 지식도 지식이지만 국제적 엘리트들과의 교분이 필수적이라며 그에 가장 걸맞은 곳이란 설명도 곁들이면서 말이죠."

그가 하버드에 유학하기로 구체적으로 맘먹은 건 대학 4년이던 2002년 봄. 1년 뒤를 목표로 GRE(Graduate Record Examination=미국 대학원 진학을 위한 일종의 수능시험)준비와 더불어 학점의 '올 A'를 위해 죽기살기로 매달렸다. 밤 새우기를 밥 먹듯이 하다 쓰러진 적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케네디스쿨과 동아시아지역학(RSEA)과정 등 두 곳으로부터 합격통보를 받을 수 있었다. 이듬해 3월의 일이었다. 물론 선택한 건 당초 목표대로 케네디스쿨이었다. 이에 앞서 그는 인문계 출신으로선 이례적으로 삼성 이건희장학재단의 제1기 장학생으로 선발돼 이미 10만 달러의 장학금도 확보했다.

-막상 가보니 어떠한가.

"한마디로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느꼈습니다. 국내에 있을 땐 저도 남들보다는 조금 특별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클래스메이트들을 보니 나이는 물론 사회경험도 많고, 아는 것도 많아 생각들이 한 수 위예요. 주어지는 것들이 저라는 그릇엔 매번 흘러 넘치니까요."

-어떤 친구들과 어떤 공부를 하나.

"전체 50명 중 교포 2명을 제외하곤 순수 한국인은 저 혼자예요. 미 국방부 고위 공무원.뉴욕타임스 기자.전 재무장관.나이지리아 구호단체회장.대만총통참모 등 다양합니다. 필수로 경제학과 통계, 협상, 지도자윤리, 정부와 사기업간의 관계를 공부해야 하고 이외에 각종 포럼 등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이 없어요. 수업도 실제 정책을 놓고 분석을 통해 문제점을 찾고 대통령이나 장관에게 해법을 제시하는 방식이에요. 주당 최소 3, 4권의 책을 읽느라 매일 5시간밖에 잠을 못 자요. 주말에도 통계 등 숙제가 많아 도서관에 처박혀야 하기 때문에 지난 학기 동안 외출도 두 번밖에 못했어요."

그는 자신의 이름에 걸린 주력(呪力)을 굳게 믿는다. 여섯 살 때부터 전투기에 빠져 전투기 관련 공부를 위해 영어에 빠졌고, 그 덕에 토종실력으로 토익만점, 시드니 올림픽 리포터, 라팔비행, 광고모델, F-16비행, 하버드 유학 등 지금까지 삶이 '전투기+영어'를 축으로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버드 지원 자기소개 책자의 제목도 '베스트 윙(Best Wing)'이라 했고 지금도 외국친구들로부터 이 별칭으로 불리기를 좋아한다. 미래를 향한 그의 '비행'엔 고도의 한계도, 정해진 착륙지도 없다는 그다. 전투기조종사의 꿈을 접은 지 올해로 꼭 10년-. 그의 날갯짓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

"국제적인 항공비즈니스를 하려면 항공무기체계+영어+중재협상력+국제법의 네 박자를 고루 갖춰야 거의 완벽하다고 볼 수 있어요. 현실적으로 이런 조건을 충족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저는 앞으로 국제법만 더 하면 가능합니다. 조국을 위해 봉사할 수있도록 저에게 내린 하늘의 배려라고 믿어요. 반드시 해내고 말 겁니다."

글=이만훈 사회전문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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