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유학문제뭔가>上.도피성 출국 방탕늪 직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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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재산상속을 위해 친부모를 칼로 난자해 살해한 朴漢相군(23)의 범죄는 윤리의식이 마비된 일부 젊은 세대의 행태와 우리 교육의 파탄을 극적으로 보여준 충격적인 사건이지만 동시에 명확한목적의식과 사전준비없이 떠나는 현실도피성 유학풍 조에 대한 경종도 되고 있다.범행의 직접계기와 범행 과정이 유학생활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현재의 불건전하고 문란한 유학풍조는 자율화조치가 이뤄진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전까지의 해외유학은 국내 대학에서 학사.석사과정을 마친 소수 엘리트에게나 개방된 좁은 문이었다.그러나 자율화조치이후 강남지역 졸부들을 중심으로 조기유학바람이 불어 국내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상당수가 사전준비없이 일단 가고 보 자는 식의 무분별한 유학풍조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국내의 사설 유학알선기관들도 마구잡이로 회원을 모집,대량으로 유학생들을 송출했다.
최소한의 어학능력조차없이 유학에 대한 사전지식도 없이 떠난 이들은 대개 현지적응을 위해 대학부설 어학원에 등록,짧게는 수개월부터 길게는 1~2년을 어학연수에 투자한다.
朴군이 등록했던 LA근교의 프레즈노 퍼시픽 칼리지부설 어학원은 미국현지에선 거의 무명에 가까운 대학교육기관이다.
LA주변에는 한국유학생들을 주 대상으로 하는 대학부설어학원이10여개에 이르나 교육의 질적 수준은 형편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업은 뒷전인채 캐딜락등 고급승용차를 몰고 다니면서 술집.
도박장을 전전,주말이면 LA에서 라스베이거스 도박장까지의 고속도로는 한국 오렌지족 유학생들의 고급차량이 꼬리를 문다는 말들이 교포사회에 퍼져있다.이때문에 미국사회에 어렵게 정착한 교포들이 돈을 물쓰듯 하면서 위세를 과시하는 이들 도피성 유학생들을 기피하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하다.
이번 사건의 범인인 朴군이 라스베이거스도박장에서 2만3천달러라는 거액을 잃고 부모 몰래 귀국해 사채를 얻어 쓰기까지 한것으로 조사됐지만 도피성 유학생들에겐 비밀귀국이 흔한 일이다.
올해 2월 미국.영국등에 유학했던 재벌과 사회 유력인사를 부모로 둔 몇몇 유학생들이 부모 몰래 일시귀국해 흥청망청 즐기며고급승용차를 타고 가다 끼어든 프라이드승용차 운전자를 집단폭행한 사건도 유사한 경우였다.
호주에서는 골프로 고교를 가기위해 골프장과 어학원을 동시에 다니는 유학생에서부터 호스티스들까지 어학원에 등록하고 있으며 이들은 주말이면 이국의 외로움을 달랜다며 디스코테크에서 모임을갖고 마약.도박.성문란등 타락의 길을 걷는 것으 로 알려졌다.
호주의 경우 국.중.고생 유학생들의 경우 한국에서의 학업성적이 상위 30%이내이고 부모 또는 삼촌이내 친척집에 머무르고 유학목적이 뚜렷한 경우는 잘 적응하고 있다.
반면 한국내 결손가정출신이거나 성적이 중하위권이었고 현지에서형식적인 보호자와 함께 지내거나 중산층가정 출신이더라도 급히 유학이 결정된 학생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 비즈니스스쿨에서는 3백60명의 한국여학생중 유학기간에 임신중절을 경험한 사람이 6명이나 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무분별한 유학풍조가 심각한 사회문제를 낳고 있는 가운데 외국의 대학들은 재정난타개를 위해 한국유학생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유학을 떠나는 한국학생수가 연간 2만5천여명에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1인당 쓰는 연간 최소평균비용이 1만5천달러이므로 연간 4억달러이상을 뿌리고 있지만 정상적으로학위를 끝내고 들어온 사람조차도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투자한만큼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유학만 가면 모든것이 해결된다』는 그릇된 유학관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李夏慶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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