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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공정경쟁 아쉬운 韓肥입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월드컵 축구 개막전을 앞두고 경기장에 관중이 빽빽이 들어찼다.양팀 선수들이 운동장 한가운데 나와 몸을 풀고 난뒤 심판의 휘슬이 울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때 느닷없이 한쪽 팀에서 국제축구연맹(FIFA)이 정한 경기 규칙이 자기네 쪽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돼있어 시합을 할 수 없다고 게임 포기를 선언해 버렸다.
선수층이 엷고 체력과 신장에서 열세인 이 팀은 경기장 밖으로나와 관중들에게 자기들이 이기려면 경기 규칙이 바뀌어야 한다고주장했다.들떠 있던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꼴이다.
동부그룹이 한국비료 주식매각 입찰을 사흘 앞두고 돌연 입찰 참가 포기선언을 하고「場內」에서「場外」로 나가 버린 것은 꼭 위와 같은 꼴이다.
정부에서 70여개 공기업을 민영화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공개경쟁입찰로 매각되는 첫번째 대상이 한국비료인만큼 재계의 관심이 온통 쏠려 있는 터였다.
물론 동부 입장에서야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는 속사정이 있다. 동부의 한 관계자는『그룹에서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 인수예정가액에 간신히 턱걸이하는 상황에선 삼성과 도저히 싸움이 안된다』고 말하기도 했다.게다가 복합비료를 생산하는 동부화학이 한국비료와의 통합운영에 대비해 요소비료공장과 암모니 아공장을 지난 89년 폐기했기 때문에 한비를 인수 못하면 회사 운영마저어려워진다는 얘기다.
하지만 스포츠에 경기 규칙이 있듯 시장경제에서는 기업들이 지켜야 할 룰이 있다.바로 공정한 경쟁의 룰이다.그동안 우리 경제는 시장경제를 내세우면서도 경쟁이라는 룰보다 감정과 정서를 앞세우는 바람에 국제시장에서 빈번이 곤욕을 치렀다 .
일반 공개경쟁입찰에서 이기려면 경쟁 당사자들은 상대가 누구든술수보다는 정보와 자금력을 모두 끌어모아야 한다.지레「場外」로뛰쳐나가 流札을 유도한다든지,경쟁입찰방식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든지 하는 것은 UR 이후 냉정한 개방경 제 시대를 맞는우리 기업들의 자세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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