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만들기(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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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물리학자 이휘소박사는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러 미국 일리노이의 어느 거리를 걷고 있었다. 이때 옆을 달리던 자동차의 휠 캡이 빠져 날아가 이 박사를 쳤다. 이 뜻밖의 사고로 그는 아까운 생애를 마쳤다. 그의 일대기를 적었다는 소설이 요즘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되어 화제다. 그러나 소설내용은 사실과 달리 그가 핵무기 제조 정보를 들여와 핵무기 개발에 참여하다가 미국 첩보부 손에 죽어 국립묘지에 묻혀잇다고 되어있다. 이러니 국립묘지에 때아닌 이 박사 묘지를 찾는 사람이 는다고 한다.
픽션이니 왜 그렇게 사실과 다른 얘기를 썼느냐고 따질 수는 없다지만 실존했던 인물을 이렇게까지 왜곡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남는다. 원래 이 소설은 몇해전 『플루토늄의 행방』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었다가 소리없이 사라졌던 책이다. 비록 수정 보완을 했지만 기본골격은 같은데도 리바이벌 하자 2백몇십만부의 베스트셀러로 둔갑했다. 쓰레기더미속에서 진주를 찾는 혜안 탓인가,아니면 조작 선전술의 힘이 작용한 탓인가.
며칠전 SBS­TV가 방영한 기획특집프로를 보면 요즘 베스트셀러는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여러증언을 통해 입증하고 있다. 우선 베스트셀러를 집계해 발표하는 4,5개 대형서점의 책을 집중적으로 사들여 통계를 조작하는 수법이 유행이라고 한다. 대헝서점 집계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기 시작하면 당장 4천여소매 서점이 이를 보고 주문하니 그 위력이 클 수 밖에 없다. 여기에 독자 구미에 맞춰 짜깁기 형식으로,또는 공동 집필로 소설을 주문생산하는 방식도 유행이라고 한다. 여기에 덧붙여 책광고를 했다하면 정말 끝내줄 만큼의 광고를 해버리는 엄청난 물량공세를 벌인다. 한해에 3만종 신간이 쏟아진다면 독자나 서점이 책의 내용이나 성격마저 분간하기 힘들다. 이러니 독자의 눈에 뛸만큼의 광고를 할 수 밖에…. 그래서 책 한권 내놓고 1억원 또는 몇십억원의 광고비를 쏟아붓는다는게 요즘의 도서 판매전술이다.
프랑스 TV에선 책광고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엄청난 광고비를 도서에 붙였을 경우 책값이 크게 오를 것을 배려한 탓이고 책이란 독자의 감동과 평론가의 1차적 평가를 통해 구전으로 전해지는게 정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출간 10일만에 수십만권이 팔려나간다는 요즘 베스트셀러는 이런 평가와는 무관하다.
이런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사실 자체가 이 사회의 맹목적이고도 불성실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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