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노동자24시>3.호텔 간이무대 폴란드 악사트리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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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바 야체코브스카(36.여.첼리스트),저지 야라브카(37.피아니스트)조안나 야스키에비체(37.여.바이올리니스트).
「쇼팽의 나라」 폴란드에서 오랫동안 팀을 이뤄 현악삼중주를 연주해온 이들 베테랑 트리오는 한국에 온지 이제 한달남짓.
우리돈으로 80만원 정도인1천달러의 월급과 숙식을 제공받고 인터콘티넨탈호텔 로비라운지의 간이무대에서 하루 다섯시간씩 연주하는 일시취업자다.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국제화와 고급문화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거기에「싼값으로 고 급품을 사자」는 경제논리까지 가세해 연주가도「수입」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한국은 자동차를 잘 만든다는 것과 50년대에 비극적인 전쟁을 겪은 나라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선율을 통해 폴란드를 알리는 일에 큰 기쁨을 느낍니다.』 야체코브스카와 야스키에비체는4월1일부터 6개월간 예정으로 계약하고 3월말 한국땅을 밟았고야체코브스카의 남편인 야라브카는 한달 늦은 5월1일 합류했다.
어린시절부터 음악을 전공해 고교.대학과 음악원을 거친 세사람은폴란드 국내 오 케스트라에서 10년간 함께 일했고 같은 기간중4년동안 트리오로 연주활동을 해왔다.
한국에 오기전에도 스위스.독일.쿠웨이트.이집트등을 순회하면서계약연주를 해왔다.
순회공연을 하게 된 것은 예술가 특유의 자유분방한 성격탓도 있지만 주로 경제적인 이유가 컸다.
『폴란드에는 음악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50만명 정도나 됩니다.음악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경쟁이 심해 활동무대가 부족합니다.경제수준도 낮아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보수를 받습니다.』 비슷한 수준의 폴란드 연주가들은 한달에 5백달러정도를 받지만 외국에선 대체로 1천달러 이상과 숙식을 제공받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호텔객실을 제공받고 있다.국제행사로 객실이 부족할때는 하는수 없이 한국인 청춘남녀들로 붐비는 인근 러브호텔을 숙소로 이용한다.
『틈틈이 동대문시장과 이태원으로 쇼핑나들이를 다녔는데 한 동료가 소매치기에게 핸드백을 찢겼다는 얘기를 들은 뒤로는 어쩐지외출이 망설여져요.』 야체코브스카부부의 14세짜리 외동딸은 중학교 1학년인데 할아버지가 돌보고 있다.남편과 이혼한 야스키에비체는 중학1년생인 15세짜리 아들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겨놓고 있다. 『1주일에 한번정도 국제전화를 거는데 보고싶어 울기는 커녕「약속한 선물을 샀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떨어져 지내는데 익숙해 있어요.』 각국을 순회하는 이들은 연주를 마칠때마다 격려박수를 보내거나 그만두라고 야유하는 등의 적극적인 반응에 익숙해있다.마치 무슨일이 있었냐는듯 무표정한 한국인들은 아무래도너무 점잖은 편이다.이들은 한국인청중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조용필.패티킴등의 대중가요도 배워 연주할 생각이다.
『아직 한국을 잘 모르지만 호텔은 외국인도 불편이 없을 만큼국제수준인데 호텔밖에 나가면 그렇지 못해 차이가 너무 큰 것 같아요.』 세계 여러나라를 둘러본「현대판 집시」연주가 눈에 비친 한국의 인상이다.
〈李夏慶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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