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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나진·선봉지구 한국업체 참여 왜 요청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핵에 발묶인 경협 우회로 “손짓”/한국내 「연계고리」 해제논의 활발한 시점서 나와 주목
북한이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에 한국업체의 참여요청은 핵문제로 남북관계가 교착국면을 지속해온 상태에서 나온 것이어서 북한의 의도나 한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북한은 ▲나진­선봉지구 개발과 관련,중국·영국·호주·일본·대만·싱가포르·홍콩 등 7개국 업체와 현지 투자계약 체결 ▲김정우 대외경제위원회 부위원장의 방중(4월)때 나진­선봉지구∼길림성간 합작의정서 체결 ▲방북예정인 중국 경제대표단 50명에 한국업체 대표 10명 포함 요청 등의 조치를 취해 경제특구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특히 북­중간 합작의정서에 「나진­선봉지구에서 한국인 및 화물통행을 허용한다」는 부칙을 둔 것은 한국업체의 적극유치 의지를 밝힌 것이다.
북한이 대외개방 시범지구인 나진­선봉지구에 한국업체들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은 지난해 말에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길림성 철로항구지휘부의 책임자 유백송씨가 중국 훈춘지역과 북한 나진­선봉지구의 연계개발 청사진을 들고 서울을 방문해 한국기업들과 접촉을 벌였다.
핵문제로 인해 남북한 관계가 긴장속에 빠져들었음에도 북한은 중국을 통해 한국업체들의 자본·기술유치에 나섰던 것이다.
따라서 이같은 북한의 움직임은 북경·연변진출 한국업체들에 전혀 낯설지는 않다.
북한은 이미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의 금강산 개발 참여,대우그룹 김우중회장의 남포 수출공단 유치 등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한국기업들의 대북진출은 남북한 관계가 긴장에 빠지며 한발자국도 진전되지 못해왔다.
지난해 중국 영길시의 선호그룹이 청진항 개발권을 따내 한국의 동부고속그룹의 자본을 유치하려던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진행됐음에도 실질적 진전이 없었다.
한국기업들은 「핵문제 해결이전의 남북경협 불가」라는 정부 정책 때문에 대규모 자본·기술진출보다는 제3국 기업을 끼고 임가공에 나서는데 그쳤다.
북한은 지난해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이래 핵문제로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12월에는 「무역제일주의」 방침을 확정해 앞으로 3년간 본격적으로 무역을 비롯,대외개방에 나설 것을 천명하고 최근엔 정무원 대외경제위원회 산하에 「북남 협력교류국」을 별도로 설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것은 북한이 머지않아 본격적인 남북경협이 활성화될 전망을 갖고 이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북한의 한국업체 진출요청은 시기로 보아 중요성을 갖는다.
즉 한국내에서 핵문제와 경협의 연계고리를 풀어 경협을 통해 남북한 관계를 진전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업계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있어왔고,평통자문회의가 이를 정부에 건의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한국 대기업들은 직접경협의 날에 대비해 중국이나 제3국을 통한 대북진출을 본격화할 움직임을 보여왔다.
주중 한국대사관이 20일 중국진출 각 업체에 중국과 합작관계를 활용,대북진출에 대비할 것을 권고한 것은 「핵­경협 연계」라는 정부의 입장에 변화가 일고 있음을 시사하는지도 모른다.
다만 남북경협이 표면화되더라도 당장 남북한관계의 진진어 이뤄질 것으로 속단하기는 이르다.
북한이 한국업체의 대북진출을 중국을 통하는 방식,즉 「간접협력」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기업들이 나진­선봉지구의 투자는 정부와 협의를 거치지 않을 수 없고,이는 남북한 당국간 관계의 진전을 유발시키는 촉매로 작용할 수 있다. 북한도 남북관계가 냉각기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나진­선봉특구나 청진수출항 개발이 늦어지기 때문에 남북한 직접경협에 관심을 더 가질 수 있다.
북한이 외국자본·기술 유치와 남북 간접협력방식에서 성과를 거두면 현 상태가 오래갈 수도 있지만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남북 직접경협이 일정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유영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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