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태국여행 걷기의 시작, 방콕 짜뚜짝 시장과 카오산 거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상대적으로 물가가 낮은 방콕에서 망설임 없이 택시를 잡아타는 일은 낯설지 않다. 시내를 오가는 데 드는 택시비는 많아야 우리 돈 3천원에 해당하는 100바트 정도니까. 하지만 값싼 택시 요금에 매료되어 걷기를 포기한다면 당신은 방콕의 절반만 즐기고 귀환하게 된다. 테헤란로보다 지독한 교통 체증에 목울대를 세우는 대신, 짜뚜짝 시장과 카오산 거리의 행복한 골목을 돌며 자유로움을 만끽해 보는 것이 어떨까?

방콕에서 아크로바틱 자세를 사정없이 권하는 타이 마사지와 속살이 꽉 들어찬 해산물 요리, 혹은 섹스마저 뮤지컬로 만들어내는 ‘원나잇 인 방콕’의 걸출한 나이트라이프와 코브라를 위시한 탐욕적 보신에만 관심을 뒀다면 나의 여행은 충전은커녕 덕지덕지 피곤에 쌓인 고문이 되었을 것이다. 마사지를 자주 받는 건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진리가 타이르듯 내 몸에 오히려 해가 되고, 밤마다 호기롭게 펼쳐지는 ‘섹스 쇼’ 역시 숨겨두고 애용하고픈 AV보단 두 번 보면 질리는 시대착오적 코미디에 가깝지 않던가. 가격 대비 성능이 탁월한 해산물 요리와 열대 과일 주스는 더할 나위 없었지만, 그것만으로 여행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살모렐라 균이 뚝뚝 떨어질 듯한 택시 에어컨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다. 그때 발견한 곳이 짜뚜짝 시장(Chatuchak Market)이었다.
값싼 요금에 반해 택시를 집어타고 꽉 막힌 도로에서 시간 죽이기를 포기했을 때, 비로소 방콕은 그만의 유쾌하면서도 열정적이고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내 주었다. 덥지 않았느냐고? 사실 열대야가 거듭돼온 서울의 여름은 이미 방콕의 더위를 따라잡은 지 오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팍이 젖는 정도의 적당한 땀과 습기는 지친 여행객의 나른한 발걸음을 건강하게 이끄는 촉매제임에 분명했다.
사실 ‘주말 시장(Weekend Market)’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짜뚜짝 시장을 평일 오후에 찾는 것은 모험이다. 하지만 염려 마시라. 공식 휴일인 월요일과 화요일을 제외하면 4만 평이 넘는 거대한 시장은 방콕 문화 체험지로서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금요일엔 90% 이상의 상점이 문을 열고, 토요일과 일요일엔 1만 곳이 넘는 상점들이 불을 밝힌다. 대혼란을 피해 여유롭게 둘러보고 싶다면 평일이 보다 안정적인 선택이다!). 시장 입구부터 즐비한 수공예품점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방불케 할 만큼 훌륭한 작품들을 나열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한 무리의 유럽 관광객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과연 이런 곳이 존재한다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싶을 만큼 짜뚜짝 시장의 1만여 상점들이 쏟아놓은 물건들은 혀를 내두르게 했다. 정밀한 수공예품은 시작에 불과했던 것. 출처가 어디일지 궁금하게 만드는 골동품과 수공예 액세서리, 태국산 비단 의류, 쓰임새가 너무 궁금한 다채로운 가죽 제품들, 청담동 리빙 로드 숍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미니멀한 가구와 조명들은 발걸음을 오래도록 붙잡았다. 한켠에선 제주도 수목원에서나 목격했을 법한 열대 식물과 희귀한 금관앵무새까지 팔고 있었다.
짜뚜짝 시장의 미덕은 이 수많은 상품들이 상당히 ‘착한 가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시내에서 눈여겨봐뒀던 기념품들은 50%에도 미치지 않는 가격대를 선보였다. 나는 ‘작품’에 가까운 10만 원대 금도금불상을 사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자제하고, 대신 향초 꾸러미로 정서적 포만감을 맛보았다.
태국 서민들이 즐기는 식당들에서 맛보는 30바트짜리 쌀국수 한 그릇은 육체적 포만감까지 보충해 주었고, 짜뚜작 시장만이 가진 다채로운 열기(이를테면 그림을 직접 그리는 화공들의 손길과 수공예 가방을 만드느라 분주한 장인들의 표정!)는 결국 북적대는 주말 시장까지 한 번 더 걷기를 자청하게 만들었다.


짜뚜작 시장만큼 온갖 희귀한 물품들이 배치된 대규모 시장은 아니지만, 카오산 거리(Khao san Road) 역시 다채로운 태국 문화의 집결지로 걷는 즐거움을 선물하는 곳이다.
원래 여행사와 게스트하우스가 밀집됐던 300미터 거리에 몇 해 전부터 고급 카페와 숙소들이 들어서면서 이곳은 ‘해외 여행객들의 보고’라는 애칭을 얻게 되었다. 2차선 도로는 인사동의 주말처럼 오후 5시 무렵부터 차량이 통제되고 수많은 보행 여행자들의 완전한 천국으로 변모한다. 먹음직한 아이스크림과 와플 세트를 90바트에 판매하는 노천카페와 100~300바트 정도면 멋진 헤나를 팔뚝에 새길 수 있는 문신 가게, 그리고 10바트짜리 코코넛 주스를 어찌 마다할 수 있으랴. 은세공품이나 기념 티셔츠들은 짜뚜짝 시장 못지않게 저렴하고, 열띤 흥정이 가능하다는 점을 유념해 둬도 좋다.
무척 북적대는 거리지만, 카오산 거리의 분방한 혼란함은 묘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러시아와 그리스와 터키와 대한민국에서 온 자유로운 영혼들이 노천카페에 기대 앉아 정보를 교환하고 모험담을 풀어내는 파티장 같은! 매일 아침 지각을 염려하며 출근길에 올라 결재와 보고서 작성, 휴대폰에 노이로제를 앓던 서울의 일상을 경험했던 지친 영혼이라면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는 일탈의 거리인 셈이다.


Travel Tip
짜뚜짝 시장은 방콕의 스카이 모노레일 BTS를 타고 모칫 역 1번 출구로 나오거나, 지하철 깜팽팻 역에 하차 2번 출구로 나오면 곧 찾을 수 있다. 방콕 시내에서 20~30분 거리에 있으며, 택시를 탈 경우 요금은 50바트 안팎.
카오산 거리는 공항버스가 운행되는 곳이며, 역시 시내에서 50바트 안팎의 요금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할 수도 있다. 물론 공항에서 택시를 타면 50바트 정도의 톨게이트비가 추가된다. BTS를 타거나 택시를 타도 좋지만, 시장과 거리에 들어선 다음에는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걷기를! 걷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글과 사진 정명 자유기고가 maenglee@hanmail.ne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