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판결] 美 연방법원, FBI 개인정보 수집 제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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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호 13면

미국판 국가보안법인 ‘애국법(USA Patriot Act)’은 2001년 9·11테러 사건이 발생한 뒤 6주 만에 전격적으로 제정된 것으로 집행 과정에서 헌법적 문제로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이와 관련해 뉴욕 연방지방법원의 빅터 마레로 판사는 6일 애국법의 일부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1조와 권력분립 보장을 침해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지난해 개정된 애국법은 연방수사국(FBI)이 보안문서(security letter)로 전화·인터넷 통신 회사를 포함한 통신회사에 법원의 허가 없이 정보를 제공하도록 강제하고, 정보를 제공한 회사에 대해 해당 고객을 포함해 어느 누구에게도 정보를 제공한 사실을 알리지 못하게 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은 영구비밀 유지 명령에 대해 법원이 심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된다.

마레로 판사는 2004년에도 FBI가 은행·신용카드사·인터넷서비스 제공업체·도서관 등에서 가입자 정보를 법원의 승인 없이 넘겨받을 수 있도록 규정한 애국법 조항 중 통신회사 등이 개인정보를 제공한 사실을 고객들에게 알리지 못하도록 한 부분을 위헌이라고 판결했다(당시에는 법원에 사법심사 권한이 없었다). 이에 따라 미 의회는 일부 조항을 개정해 FBI로 하여금 사안마다 정보제공 사실의 공개가 국가안전, 수사, 외교 또는 국민의 안전을 해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법원은 FBI가 보안문서를 보낸 사실을 공개할 수 없는 사유에 대해 악의적으로 진술하지 않는 한 그 소명이 충분한 것으로 보았다.

마레로 판사는 개정된 애국법이 구법(舊法)의 결함이 충분히 고쳐지지 않았고 새로운 헌법적 문제를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법부가 헌법을 방어하는 수위를 낮추면, 프라이버시 침해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주는 것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법원의 사법심사권 제한을 비판했다.

올 3월 미 법무부는 감사보고서를 통해 FBI가 테러행위 근절을 내세워 개인 통화 기록은 물론 인터넷 교신내용, 금융거래 정보 열람 권한을 부당하게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보안문서 발부는 2003년부터 2005년까지 14만여 건에 달했다고 한다.

민주당은 부시 행정부를 상대로 법무부 장관과 FBI 국장을 문책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FBI의 이러한 권한은 국가 안보를 위해 불가피한 것이라면서 문책을 거부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려진 이번 판결은 FBI 등 수사기관의 권한남용 논란에 다시 불을 지필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6월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에서 통신사업자에게 감청장비 설치를 의무화해 휴대전화 감청을 공식화했고, 이동전화 위치정보를 1년간 보관토록 했다. 그러나 7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가을 정기국회로 넘겨졌다. 국가 안보를 위해 개인의 정보를 탐지·수집해야 한다는 주장과 프라이버시 보호가 중요하다는 헌법적 가치의 충돌 속에서 개정안의 통과 여부가 주목된다.

통신수단이 날로 발전하는 현대사회에서 사회 안전체계를 수호하기 위해 전통적인 헌법적 가치인 국민의 사생활 보호를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문제는 동서를 막론하고 논쟁거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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