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작품 국내展 관련법 정비 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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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난달 30일.한가한 토요일 오후를 맞아 화랑가를 찾은 미술애호가들은 스페인의 초현실주의작가 후안 미로의 회화.조각작품전이 열리고 있는 인사동 가나화랑앞에서 낯선 안내문을 읽고 석연치않게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다.
『정전중이라 관람이 불가능합니다』.
인근 사무실에는 분명히 전등이 켜있는데도 이 화랑관계자들은 어색한 표정으로 찾아오는 관람객들을 되돌려보내고 있었다.
정전이란 궁색한 이유를 둘러대며 전시를 일시 중단한 것은 이제까지 아무탈없이 열려온 국내의 해외전시관련 통관관행에 갑자기브레이크가 걸린 때문이다.
화랑이 해외전을 유치할 경우 지금까지는 공공기관의 교류전처럼수입승인 면제규정의 적용을 받아 전시후 재반출조건으로 들여오는게 보통이었다.또 전시중 작품이 팔리면 용도변경신청을 내고 다시 통관절차를 밟아 수입해온 것이 일반적 관행이 었다.가나화랑이 전시를 일시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관세청으로부터 이같은 관행을 인정할 수 없다는 통고를 받았기 때문.
관세청의 입장은 상업화랑에서 전시하는 미술품들은 상공자원부가정한 대외무역관리규정의 수입승인 면제대상이 아니라는 것.따라서당연히 수입절차를 거쳐야 하며 수입통관중인 물건은 어떠한 경우에도 일반공개나 전시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
관세청의 지적대로라면 상업화랑에서의 해외전 유치는 전량 수입을 전제해야 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영세한 국내 화랑들이 고가의 외국미술품들을 전량 수입해 전시.판매할 능력이 거의 없으므로 사실상 국내의 해외미술품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등 공공미술관의 교류전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가나화랑의 전시중단해프닝은 관세청이 곧 관행에 따른 통관을 허가함으로써 2~3시간만에 끝났으나 해외작가전과 관련한 법규 정비가 시급하다는 점을 재확인시켜주었다.
관세청이 엄격한 통관절차 집행에서 한발짝 물러난 것은 수입승인 면제규정이 미술품 수입사례가 거의 없던 과거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미술품 수입에 일률적으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이유때문이다. 84년 관세청이 내린「수입승인면제에 관한 전시품」의 규정은『공공기관에서 주최하거나 공공장소에서 둘 이상의 제조회사 제품을 비교전시하는 경우에 한해서 인정한다』고 돼있는데 공산품 위주의 이 규정을 미술품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관행에 따라 세관마다 입장을 달리하고 있는 것도 문제.실제 가나화랑과 비슷한 시기에 해외전을 유치했지만 다른 세관을 통했던 몇몇 화랑들은 관례의 적용을 받아 아무런 문제없이 전시를 치른 것으로 전한다.
화랑협회는 이번 가나화랑 사건을 계기로 화랑들이 해외전과 관련해 본의아니게 규정을 위반해온 점을 중시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곧 관계당국에 정식질의서를 낼 예정이다.
한국화랑협회 權相凌회장은『이번 해프닝이 일어난 것은 몸집이 커진 미술계가 아직도 옛옷을 걸치고 있기 때문』이라며『개방을 전제로한 국제화시대를 맞아 미술품 수입에 관한 규정이 재정립돼야한다』고 밝혔다.
〈尹哲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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