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택의펜화기행] 창녕 관룡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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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산 관룡사, 종이에 먹펜, 36X50cm, 2007

많은 절이 명산의 명당자리에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절이 바위로 이루어진 영산(靈山)에 자리 잡은 해남 달마산 미황사, 합천 황매산 영암사, 문경 희양산 봉암사, 창녕 화왕산 관룡사입니다. 바위 연봉의 아름다움이 금강산에 맞먹는다는 달마산 미황사 펜화를 보고 고궁박물관 소재구 관장이 “사진으로는 제대로 담지 못하는 달마산을 제대로 그렸다”고 했습니다. 펜이 사진보다 표현력이 좋아서 일까요? 아니지요.

 경사가 심한 곳에 자리 잡은 절의 좁은 마당에서 절과 산을 모두 사진에 담으려면 광각렌즈를 써야 합니다. 광각렌즈를 이용하면 가까운 피사체는 크게 찍히고, 먼 곳의 피사체는 작게 나옵니다. 그래서 미황사 사진에 달마산 연봉이 작고 보잘 것 없게 나오는 것입니다.

 

관룡사 전경

2004년 학고재에서 연 개인전에 온, 동양철학을 한다는 나이 드신 도사분이 황매산 영암사지 펜화를 보고 “그림에서 황매산의 좋은 기가 강하게 나오니 팔지 말고 애들 공부방에 걸어놓으면 공부 잘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중간색이 없는 펜화는 원근 표현을 펜 선의 굵기로 조절합니다. 황매산의 원경을 제대로 묘사하기 위해 세계에서 제일 가늘다는 펜촉의 끝을 사포에 갈아 0.05~0.07 굵기로 만들어 썼습니다. 묘사가 잘되면 그림에서도 기가 나오나 봅니다.

  신라 진평왕 5년(583)에 지었다는 관룡사(觀龍寺)도 영산으로 알아주는 화왕산(火旺山)의 기맥에 지은 절입니다. 비탈에 지은 절이라 사진으로는 화왕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담을 수가 없습니다. 펜화에는 화왕산의 전체 모습이 제대로 나오도록 구도를 만들었습니다. 10여 일 동안 화왕산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화왕산이란 이름이 ‘기가 강한 산’이란 뜻으로 해석 되었습니다. 약사전이 임진왜란 때 왜군의 방화에 불타지 않은 것도 화왕산 기맥의 혈(血) 자리에 지었기 때문이랍니다.  

김영택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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