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돼야 할 외규장각 고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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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해 9월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반환키로 약속했던 외규장각 고서를 프랑스 국립박물관은 돌려줄 생각도 않고 있다고 한다. 반환은 커녕 영구임대도 안되고 다른 문화재와 교환하면 단기간 임대는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남의 물건 빼앗아 가,그것도 다른 담보를 잡아놓고 잠깐은 빌려주겠다고 선심을 쓰는 꼴이다. 국제법상으로나,한불 양국의 선린관계로 봐서나 외규장각 소장의 고서는 반드시 반환돼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 이유를 구차하게 들 필요도 없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우리 것은 우리에게로 돌리는게 너무나 당연한 이치일 뿐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우리 것이라고 모두 돌려달라는게 아니다.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있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원본도 분명 우리 것이지만 돈황에서 프랑스인이 발견해 가져갔으니 그것까지 돌려달라고는 주장하지 않는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가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해갔다는 사실이 문서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에 국제법상 반환은 당연하다는게 국제법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런데도 정부는 영구임대도 좋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프랑스측은 협상회담마저 거부했고,반환약속 1년이 다가서는 시점에서 교환임대를 고집하고 있다.
미테랑 대통령이 고서반환을 확정했을 때 프랑스 국립박물관 직원이 울면서 도서반환을 거부하는 장면을 보고 우리는 그것을 철저한 직업의식의 발로로 보아 긍정적인 평가를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쇼는 단 한번으로 족하다. 양국 정상이 만나 결정한 일이라면 원칙에 따라 진행되는게 우호와 선린을 내세우는 원만한 외교자세일 것이다.
보기에 따라선 고속철도 차량도입이 결정되지 않은 시점에서는 고서 반환원칙을 확정하고,차량도입이 결정된 다음에는 없었던 일로 한다는 인상을 줄 수가 있다. 이렇게되면 이는 국가간의 신의와 우호에 상처를 내는 외교적 문제로 파급될 소지도 있다고 본다.
우리는 한불 양국간의 오래고도 가까웠던 관계가 몇권의 책 때문에 손상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 도서가 아무리 귀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라 한들 그 때문에 양국관계에 깊은 상처를 내는건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한 약탈 문화재이고,프랑스 대통령이 자진해 반환을 약속한 도서를 국립도서관이 거부한다고 해서 반환이 지연되고 반환 자체가 백지화쪽으로 돌아간다면,이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국가적 체통에 관련된 중대사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민족적 자존심이 걸린 이런 중대사를 다루면서 우리 정부의 교섭력이 얼마나 형편 없었길래 이런 수모를 당하는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정부의 보다 주도면밀한 교섭과 프랑스정부의 성실한 반환 노력을 통해 큰 마찰없이 우리의 피탈 문화재가 되돌아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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