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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의 흑백 “이젠 나라살림 살리자”/남아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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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만델라 경제」 어떻게 될까/“풍부한 자원” 「대국」 성장 잠재/백인 “불안” 흑인 “기대”… 정치안정 열쇠
남아프리카공화국 총선으로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새 집권당으로 탄생함에 따라 이들이 끌고 갈 경제정책에 국내외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ANC는 흑인복리증진을 위해 다분히 사회주의적인 색채를 가미할 것으로 보이나 급격한 정책전환보다 당분간 과거 백인정권의 정책을 근간으로 점진적인 개혁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주의색 가미
짐바브웨·모잠비크 등 인접국이 백인통치를 종식시킨후 국가재건에 실패한 선례를 의식하고 있는 ANC는 3백여년동안 형성된 흑백간의 대립과 경제적 불균형이 단시일내 치유되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ANC는 이같은 판단을 토대로 재건개발계획(RDP)이라는 경제프로그램을 마련해놓고 있다. RDP는 자본주의를 수용하면서도 광물자원의 국가귀속과 같은 사회주의 색채도 가미한 혼합경제계획이다.
이 계획은 과거 인종차별에 의한 경제폐습을 철폐함으로써 소외돼왔던 흑인위주의 경제정책을 추진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우선 부유세를 신설,백인들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을 주택·도로 등 흑인을 위한 기간산업 확충에 충당할 계획이다.
7백만명이 넘는 흑인들의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방편으로 공무원과 기업들에 인구비례에 준한 고용할당량을 정해놓고 흑인의 고용을 의무화할 방침이다.
○흑인고용 의무화
또 17%의 백인이 국토의 80%를 점유하는 토지소유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토지청원법원을 창설한뒤 토지개혁에 착수,국가가 소유한 유휴지와 군용지를 1차로 흑인에게 무상으로 배분한다.
이와함께 백인소유의 토지와 농지를 헐값에 매입해 흑인을 이주시키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남아공은 1인당 국민소득이 3천달러 수준이어서 리비아를 제외하면 아프리카대륙에서 가장 높은 편인데다 3천9백만명의 인구·풍부한 자원이 잘 발달된 기간산업을 바탕으로 도약할 경우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국민소득 3천불
짐바브웨 등 인근 남부 아프리카 10개국중 남아공이 이 지역 총 국내총생산(GDP)액중 80%를 차지하며 남부 아프리카 최대의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는 점도 자신감을 갖게 하는 요소다.
그러나 장미빛 전망만을 갖지 못하게 하는 불안요소도 만만치 않다.
ANC의 계획은 인종차별로 야기된 지역간·인종간 불균형 해소를 위한 신정부의 자본지출이 증대되고 이같은 지출이 국내 수요와 수출증가로 이어져 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 만큼 앞으로 전개될 정치상황의 안정여부가 남아공 경제의 최대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계획에 포함된 사회주의적 요소에 백인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저항할 경우 계획은 전체적으로 일그러질 수도 있다.
특히 ANC 전국구 후보의 절반이상이 공산당 출신이라는 점도 백인들의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ANC가 공약으로 내건 흑인의 실업해소와 복리증진 등 흑인들의 경제적 기대감을 얼마만큼 충족시키느냐도 변수다.
백인의 저항과 흑인의 불만이 맞닥뜨리게 될 경우 정치불안이 계속돼 경제발전은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요하네스버그=고대훈특파원>
◎“110달러 시장을 잡아라”/신경제건설 계획에 각국서 “군침”
「검은 대륙」의 기관차 남아공을 잡아라.
넬슨 만델라의 집권과 함께 새롭게 태어날 남아공을 두고 각국의 유수 기업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남아공 시장의 갑작스런 부상은 신임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되는 만델라의 야심만만한 국가재건계획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신임 만델라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경제건설계획은 1백10억달러 규모. 만델라는 이밖에도 과거 백인정부의 국방 중시 정책을 전면 탈피,앞으론 국가의 총역량을 민생안정과 국가건설에 집중시킬 것임을 다짐하고 있다.
남아공의 이같은 변화에 가장 빠르게 반응하고 있는 기업중 하나는 독일의 벤츠사. 벤츠사는 아프리카의 정치적인 불안정으로 인해 안전도가 높은 차량을 선호하는 정치지도자들의 성향에 맞춰 이미 남아공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고급 리무진을 생산해 팔고 있으며 앞으로 현지 공장건설을 더욱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또 전자업체도 거느린 지멘스사는 이미 현지 투자액이 3억달러에 달하고 있다. 지멘스사의 아프리카 담당 책임자인 클라우스 괴텔은 『미국이나 일본에 앞서 남아공시장을 선점하자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라며 『남아공이야말로 아프리카의 경제건설을 선도할 수 있는 견인차』라고 기대를 표하고 있다.
세계적인 점포망을 갖고 있는 미국의 호텔 체인 홀리데이 인도 남아공 시장확대에 나서 지난해에 남아공내 객실수를 4천5백개에서 6천개로 늘렸다.
이밖에 미 캘리포니아의 플루어사를 비롯한 미국내 대형 건설업체들이 남아공의 도로·철도 등 기간산업과 주택건설에 참여키 위해 진출을 서두르고 있고 시멘트·유통업체 및 은행 등 각종 다국적 기업들이 현지 합작을 위한 시장조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일부의 이같은 활발함에 반해 아직까지 관망의 자세를 보이고 있는 기업도 적지 않다.
이들 기업들이 선뜻 단안을 내리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아직도 남아공의 정치적인 장래에 확신을 못갖고 있기 때문. 88년 남아공에서 철수했던 미국의 포드사를 비롯,GM 등과 같은 자동차회사들은 남아공의 시장성에 공감하면서도 투자확대에 신중한 입장이다.
3년전부터 남아공에 지사를 설치,운영해왔던 한 업체 간부는 『투자여건은 호전되고 있는 것이 틀림없지만 정치적인 상황은 여전히 변수가 많다』고 비슷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또 이미 남아공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던 일본이나 유럽의 기업들 역시 같은 이유로 아직은 주춤하고 있으나 신임 만델라정부가 자리를 잡아간다고 판단될 경우 각국의 대기업들이 물밑듯이 남아공으로 밀려들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을 달지 않고 있다.<워싱턴=김용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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