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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수 잘못 찾은 아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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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년 전인 2005년 9월 11일 일본 집권 자민당은 흥분에 들떠 있었다.

선거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압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개표 후반 도쿄 나가타초(永田町)에 있는 자민당 본부에 나타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상기된 표정으로 "국민의 승리다"라고 외쳤다.

고이즈미는 같은 해 8월 자신이 가장 역점을 뒀던 우정 민영화 법안이 참의원에서 부결되자 "난 죽어도 좋다"며 전격적으로 중의원을 해산, 총선거를 실시했다. 정권이 야당에 넘어갈지도 모르는 일종의 도박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승리했다.

그로부터 2년의 세월이 흐른 뒤 고이즈미의 후계자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11월 1일로 만기가 끝나는) 테러대책 특별조치법의 연장에 총리직을 건다"고 선언했다. 법안의 국회 통과 때까지 아무 말 않고 기다렸다 전격적으로 중의원을 해산한 고이즈미와 미리 배수진을 친 아베의 방식은 다소 차이가 난다. 그러나 큰 흐름은 매우 흡사하다. 고이즈미가 우정 민영화에 집착했다면 아베는 '미.일 동맹'과 '안보'에 승부를 걸었다.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때문인지 모른다. 기시 전 총리는 미.일 안보조약의 개정에 정권의 사활을 걸었다.

그런 점에서 고이즈미나 아베나 똑같이 자신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법안의 성사 여부에 총리직을 걸었다. 또 우정 민영화 법안이 참의원에서 부결됐듯 아베가 주창하는 '테러 대책법'도 참의원에서의 부결이 거의 확실시된다. 지난달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결사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후계자답게 수법은 비슷하게 흉내를 냈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샐러리맨인 구로다 마코토(黑田誠.40)는 "우정 민영화는 국민의 공통된 합의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테러대책법은 다르다"고 말했다.

결의를 내비치고, 신념을 관철시키려 하고, 도박을 거는 것도 좋지만 어느 정도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야 함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우리가 지난 5년간 겪어 온 과오를 일본이 이제 와 겪는 듯하다.

김현기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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