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핵 위협 받으며 떨고 살게 될 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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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어디로 끌고 가려 하는가. 노 대통령은 북한 핵무기와 평화협정에 대해 위험한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북핵, 북핵이라고 소리를 높이는 것은 정략적”이라며 “6자회담에서 풀려 가고 있는데,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북핵을 말하라는 것은 가급적 싸움하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또 “평화협정은 제안할 생각이 있느냐의 수준이 아니라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라고 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발언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충격적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중요한 약속을 했다. 북한이 검증 가능한 비핵화 조치를 이행하면 한국전쟁을 종결시키는 평화협정에 북한과 공동 서명하겠다는 뜻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달키로 한 것이다. 한·미가 보조를 잘 맞춘 의미 있는 합의였다. 그런데 불과 며칠 만에 ‘언제 그런 합의를 했느냐’는 식으로 나오니 기가 막히는 일 아닌가.

북한 핵시설의 연내 불능화 합의 등으로 북핵 문제 해결에 진전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검증 가능한 비핵화의 핵심인 ‘북한의 기존 핵무기 제거’는 언제 이행될지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북핵 문제가 완전 해결된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무책임한 처사다.

북한의 핵 보유가 우리 안보에 얼마나 큰 타격을 주고 있는지는 삼척동자도 다 안다. 중국의 저명한 한반도 전문가 장롄구이 교수는 “핵을 가진 북한이 전쟁 일보 직전의 전술을 통해 남한 정치에 개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얼마나 섬뜩한 얘기인가. 그럼에도 이 나라의 안보를 책임진 대통령이 ‘북핵이 뭐 문제냐’는 식으로 나오니 국민의 억장이 무너지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으로 이 정권이 왜 북한과 정상회담을 하려는지 그 속셈이 드러났다. 북핵 문제는 적당히 봉합하고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을 내세워 마치 한반도에 평화가 온 것처럼 이벤트를 연출하자는 것이다.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반(反)민족적, 반(反)대한민국’ 행위다. 북한이 핵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평화’가 올 수 있는가. 이런 상황에서의 평화선언은 실효성이 전혀 없는 종이 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통령선거를 뒤흔들 소재로 삼을 셈인가. 이제라도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족의 존망이 걸린 북핵을 외면하는 것이 바로 정략적 사고다. 무엇보다 헌법과 영토를 훼손할 특권을 가진 사람은 한국에 한 명도 없음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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