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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총리의 우선 과제(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북한에 대한 추가 핵사찰이 시한이 다가오고 북한·미국 접촉이 재개되는 등 북핵문제가 미묘한 단계에 접어드는 가운데 새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이 임명됐다. 국내외로 어려운 시기에 맡게 된 중책이다. 그러나 신임 이홍구부총리는 한차례 통일원장관을 지낸 경험이 있고,당시 정책수립이나 남북한 관계정립에 원만한 능력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은바 있어 앞으로의 통일정책 수행이 기대된다.
그러나 기대는 물론 당장 참신한 통일정책이 마련되기를 바란다거나 새로운 접근방법에 대한 것은 아니다. 그런 일 보다는 김영삼정부 출범이래 줄곧 문제가 되고 비판삼아온 통일정책의 혼선을 바로 잡는 일이 우선적인 과제다. 통일관계부처간의 의견을 조정하고 정책의 일관성을 갖도록 하는 일이 급하다.
북핵문제가 제기된지 몇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전없이 현재처럼 복잡하게 얽히게 된 것은 물론 북한의 태도 때문이다. 그러나 핵교섭에서 남북한간의 대화가 배제된채 미국과 직접 접촉을 하게 되는 등 사태가 상당한 부분 북한쪽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은 우리 정책당국자들에게도 일단의 책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동안 북한문제를 다루는 정부기관끼리 의견조정없이 다른 목소리를 내는 과정에서 우리쪽의 전략을 대부분 노출시켜왔다. 또 결정된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무원칙하게 수정하는 등 단견을 드러냈다.
따라서 우리는 신임 이 부총리가 통일정책은 현재의 기조를 바꾸기 보다는 일관성있게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로 통일·안보팀의 조화에 주력할 뜻을 밝히고 있는데 주목하고자 한다. 또 그가 과거의 경험을 살려 핵문제를 비롯해 남북한관계에 보다 현실적인 접근을 보이게 되기를 기대한다.
다만 유념해야 할 것은 현재의 상황이 그전과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철저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그전과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공존이 중심문제였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북한의 핵투명성을 밝히는 것이 초미의 과제가 되어 있다.
그러나 북한의 태도로 보아 쉽사리 이 문제가 풀려나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추가사찰 시한이 다가오자 핵연료봉 교체문제를 제기하는가 하면 느닷없이 미국에 대한 평화협정을 맺자고 제의하는 등 문제의 초점을 흐리고 시각을 지연시키려는 속셈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파상공세는 또 핵카드를 세분화해 협상에 이용하려는 저의를 내비치는 것이다.
신임 이 부총리가 당장 맞닥뜨려야 할 문제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처해야할지 관게부처간의 지혜를 모으고 조정하는 일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통일부총리에게 그러한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책임과 권한이 충분히 뒷받침되고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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