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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개항 직후 한·중·일 세계화 어떻게 진행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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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김기혁(1924∼2003) 전 포항공대(역사학) 교수는 국내에서 그리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며 대표작을 비롯한 논문들을 대부분 영어로 썼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메이지대를 졸업한 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데이비스캠퍼스(U.C.Davis)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부터 줄곧 같은 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86년말 포항공대 초대 교양학부장으로 초빙받아 귀국했다.

 그의 주전공은 19세기 후반 개항 이후의 동아시아 근대사. 고인은 이 시기를 국제 비교사적 관점으로 분석했다. 전통적 중국의 세계질서 속에서 조선이 차지하는 위치, 서방 제국의 동방진출이 시작된 배경과 경위, 19세기 서양의 충격과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양화하는 과정 등을 총괄적으로 비교하는 방식이다. 이는 민족 중심 사관으로 이 시기를 설명해온 국내 학계의 시각과 많이 차이나는 것이었다.

 고인을 세상에 알린 대표작은 『동아시아 세계질서의 종막:한국, 일본 및 중화제국, 1860∼1882)』(영문명 The Last Phase of the East Asian World Order:Korea, Japan and the Chinese Empire, 1860∼1882)이다. 1980년 미국 캘리포티아대 출판부가 펴냈다. “동양인이 영어로 출간한 같은 주제의 책 가운데 명저 중의 명저”(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유영익 석좌교수)라는 평가를 듣는 책이다. 연세대 현대한국학연구소 오영섭 연구교수는 “서구 학계에선 일반적 시각이지만 70∼80년대 당시 한국 역사학계에서 그의 이론을 그대로 수용하기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을 것”이라며 “우리 학계도 많이 변화했지만 여전히 고인의 논문을 통해 배울 대목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7일 오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에서는 고인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는 조촐한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원장 장대련)·현대한국학연구소(소장 김혁래)가 공동으로 펴낸 유고집 『근대 한·중·일 관계사』를 통해 고인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는 자리였다.

 이번 유고집에는 그가 귀국 후 한글로 쓴 논문 5편과 영어 논문 등을 수록했다. 유영익 교수는 “19세기 후반 서양 세력의 동아시아 진출을 배경으로 한 한·중·일 3국의 관계사를 김기혁 선생이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글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정창영 연세대 총장, 조순 전 경제부총리와 김기환(고인의 친동생) 서울파이낸셜포럼 회장 등이 참석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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