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모임 정치권 열기/“계보가 당선보장 옛말… 공부해야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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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분야 전문가 되겠다”… 또다른 줄서기 시각도
국회의원들의 활동이 계보보스 주변을 맴돌던 종전의 계보정치 중심에서 정책연구와 시사현안에 대한 공부 등 연구모임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여야·지역·연령 구별없이 각종 연구모임이 의회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으며 모임별 활동도 부산하다.
이들 연구모임은 특히 여야가 뒤섞여 성향·취향 또는 친소관계에 따라 구성됐다는 점에서 상황변화에 따라선 연구모임 이상으로 발전할 수도 있을 것으로 관측돼 눈길을 끈다.
정계개편과 같은 지각변동이 오면 이합집산의 거점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인지 각 연구모임들간에는 서로 실력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물밑 경쟁을 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으며 이른바 실력자가 포함된 연구모임엔 그만큼 회원도 많아 또다른 줄서기가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현재 국회에 등록된 연구모임은 모두 9개. 마감시한인 이달말까지는 2∼3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등록한 「과학기술연구모임」(회장 김덕룡·이철의원)은 참여인사중 민자당에서 김덕룡 전 정무장관·강삼재 기조실장·김정수 전 보사부장관 등 민주계 중진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어 눈길을 끈다. 민주당쪽의 경우 역시 이철의원을 비롯 김원길·김원웅·원혜영의원 등 젊은층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 모임에 대해 여야 의원간에 비슷한 성향의 인사들이 모였다며 『정계개편이 된다면 같이 활동할 수 있는 인사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사자인 김덕룡의원은 정책정당의 모태 가능성이나 정파모임으로 전환 가능성 등에 대해 『전혀 아니다』고 부인하고 있다.
그는 『전부터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과학·기술이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을 같이해온 몇사람이 얘기를 해왔다』며 『마침 국회차원에서 지원해 준다기에 그것에 맞추었을뿐』이라고 밝혔다.
3R연구회(회장 박근호의원)도 명칭 자체만으로도 눈길을 끌고 있다. UR이후의 또다른 무역태풍으로 떠오르고 있는 그린라운드(GR·환경협상)·블루라운드(BR·노동협상)에 대해 UR와 함께 공부하고 대비하자는 취지에서 만난 모임이다.
참여의원들은 『변화와는 세계환경에 발맞추어 정치권에서도 특정분야의 전문지식 없이는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라며 『정치적인 색채보다는 환경·노동문제를 집중 연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젊은 의원들의 모임중 하나가 「통일대비의원연구모임」(회장 김충현의원)이다. 전후세대를 주축으로 한 이 모임은 차세대 주역으로서 갑자기 다가올지도 모르는 통일후의 여러가지 문제에 대한 대비를 미리 하자는 취지에서 모였다.
이 모임의 한 관계자는 『차세대를 책임질 정치인으로서 갑자기 통일에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공감을 가져 가입했다』며 『독재와 반독재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정치인들도 자신의 고유 트레이드마크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등록을 준비하고 있는 「농어촌문제연구회」(회장 정시채의원)는 농어촌문제에 관한한 최고의 정책수립·입법 전문가가 될 것을 지향하고 있다. 정 의원은 『농업을 전공한 사람들이 주로 모여 정책수립에 대해선 최고의 권위를 가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대학발전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박정수의원(민자당)은 이러한 『연구모임이 자연스럽게 환경당이나 녹색당 등으로 될지를 예측하는 것은 이르다』며 『그러나 최소한 과학적·전문적 의정풍토를 조성하거나 정책그룹화할 가능성은 충분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의원들의 연구모임이 활발한데는 두가지 해석을 낳고 있다.
하나는 보수적인 제보정치가 소멸되어가고 있는데다 정국불안까지 겹쳐 의원들이 심리적으로 불안해진 결과 소속감을 찾게 되었다는 지적이다.
다른 하나는 국제화·전문화시대를 맞아 이제 정치인도 고유브랜드를 가지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만들려는 시도라는 것이다.<김기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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