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색정국/민주당 대화손짓/청와대 유연대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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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계속 대립땐 서로 흠집” 공감대/잘되면 여야 영수회담 가능성
국회가 28일 오후에는 총리인준을 마치고 이에 따른 보각도 단행됨으로써 예각으로 치닫던 여야의 긴장이 일단 한숨돌렸다. 여야의 시비에 중심이 되었던 상무대 비리도 조사계획에 따른 활동이 시작되고,총리인준으로 내각도 일을 시작하여 흐트러졌던 정국이 정돈돼가는 느낌이다. 청와대와 여당을 몰아붙였던 민주당이 「화합」을 내세우며 국정의 2분의 1의 책임을 강조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뭔가 수를 찾아야 하는데 걱정이다.』
요즘 만나는 청와대 관계자들이 내뱉는 푸념이다.
경제부문이 잘 돌아가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자위하지만 답답해하기는 마찬가지다.
UR 이행계획서 시비,상무대 공사관련 정치자금 유입 의혹,조계종 폭력사태,영산강 오염,이회창총리 「항명」사건,김영삼대통령 차남 김현철씨 정치자금수수 시비 등 달갑지 않은 일들이 즐비하다.
금기시되던 김현철씨 이름 석자가 공공연히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나아가 김 대통령이 도덕성과 권위에 흠집을 내고 있다.
김 대통령이 부인·손자들과 외식을 하고 기업체를 방문,기업대표·노동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 담담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여유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실제 청와대 관계자들은 김 대통령이 크게 진노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살얼음판 같다고 말한다. 말수가 줄고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전언이다.
이회창 파동이 김 대통령의 권위를 적잖이 훼손했다는 분석이다. 권위에 대한 도전은 처음이 어렵지 일단 길이 열리면 다르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개혁정치로 벌어놓은 점수를 이번 이회창 파동으로 다 까먹었다는 평가도 있다.
○…이같은 상황인식위에서 청와대는 난조를 타개할 수 있는 방안모색에 골몰하고 있다.
그러나 뾰족한 수는 없는듯하고,그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이며 국민에게 직접 호소한다는게 기본이다.
국회의 총리임명동의안이 가결되면 곧바로 일부 개각을 마무리한뒤 김 대통령이 주재하는 확대 국무회의를 열어 자세를 가다듬는 결의를 할 참이다.
이어 농어촌발전대책 등을 제시,농어민의 불만을 잠재우고 기업의 활성화를 위한 갖가지 지원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UR 국회비준은 일단 제출은 하되 무리한 통과를 시도하지 않고 막판까지 방치하는 전략도 검토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여권의 대화합을 위한 조치 등도 구상되고 있으나 화합노력이 개혁의 후퇴와 동일시돼 시기선택에 애를 먹고 있다.
요즘 빚어지는 사태가 정부의 관리능력 부족이라는 점 때문에 5,6공 인사 등에 대해 과감한 발탁을 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국면전환을 위한 조치에 대해 깜짝쇼라는 힐난도 이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여권 관계자들의 또다른 걱정은 「구조적 결함」에 대해서다. 「한칼에 끝난」 이회창 파동이 그 생생한 증거라는 말이다.
난국 돌파의 명수라는 김 대통령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나갈지 모르나 문제는 악재가 끊이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없으리라는 장담을 할 수 없다는데 있다.
다행히 청와대를 벼랑으로 몰던 민주당이 갑자기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이기택대표가 『협조하여 위기정국을 타개하자』고 제안한 내용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민주당의 자세도 강경일변도에서 점차 수위를 조절해가는 등 조심스럽게 방향을 선회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박지원대변인은 『야당은 현 정국을 위기로 진단하고 있지만 호재라고 즐기는 것은 아니다』면서 청와대와 여야의 화합을 통한 정국 돌파를 제의해 주목을 끌었다.
이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조만간 정국수습을 위한 KT의 결단이 나올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대표측은 내심 김 대통령측으로부터 격식과 예의를 갖춘 여야 영수회담을 기다리고 있는듯 하다
이 대표는 최근 영수회담 제의가 올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쪽(청와대)에서 그런 이야기가 있느냐』고 관심을 표시하면서 『김 대통령도 자신만이 옳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이영덕 총리내정자로는 인물도 안좋고 여건도 안좋아 오래 가기 어렵다. 김 대통령은 야당의 의견도 들어볼 기회를 가져야 한다』며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이 대표는 국내 상황 때문에 지난 25일 미국에서 일정을 앞당겨 귀국하면서 공항 기자회견에서 『위기정국에 강력히 대처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며,여야가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어 극복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여권에 상당한 암시를 던진 것이다.
이 대표로서도 탈출구를 찾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방문 기간중 김완기 대표권한대행 등은 상무대 국정조사 협상과정에서 이대표의 뜻과는 달리 김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등을 참고인 명단에 집어넣어 버렸다.
더구나 이 대표는 귀국길에 내놓은 거국연립내각 제안이 당최고위원회에서 묵살되고 여론의 질타를 받는 수모를 겪었다. 3월11일 여야 영수회담때의 구겨진 모양새도 어떻게든 바로잡아야 한다.
이런 이 대표의 심경과 김 대통령의 여야관계 복원 필요성이 맞아떨어지면 영수회담의 성사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이 정가의 분석이다.<김현일·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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