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초초상, 100년을 목 놓아 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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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904년 2월 17일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은 유난히 많은 관객으로 붐볐다. 푸치니가 야심작으로 내놓은 오페라 '나비부인'이 마침내 초연되는 날이었다. 하지만 막이 오르고 잠시 후 객석에서는 폭소와 야유가 터져나왔다. 주역 가수의 노래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허리가 불룩 튀어나온 나비부인의 기모노 의상을 보고 "나비가 임신했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난생 처음으로 가족 동반으로 초연 현장을 지켜봤던 푸치니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1막이 끝나고 나비부인 역의 소프라노 로지나 스토르키오는 무대 뒤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이날 공연이 수라장으로 끝난 것은 푸치니에게'토스카'의 작곡 권리를 빼앗겨 분루를 삼켰던 알베르토 프란체티가 박수부대를 동원해 조직적인 방해 공작을 폈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 길게 전개된 제2막에 불만을 표한 관객들도 있었다.

푸치니는 토스카니니의 충고를 받아들여 제2막을 둘로 쪼갠 다음 몇 군데를 고치면서 3막에 핑커톤의 아리아도 삽입했다. 그해 5월 브레시아 테아트로 그란데에서 재공연했을 때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푸치니는 '나비부인'으로 돈을 벌어 구입한 요트에 '초초상'(나비부인의 본명)이라고 이름 붙였다.

1900년대 초 일본 항구 나가사키(長崎)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오페라'나비부인'이 올해 초연 1백주년을 맞는다. 오는 4월 1~5일 세종문화회관 재개관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유일한 오페라도'나비부인'이다. 푸치니의 유언에 따라 30년 시작된 푸치니 페스티벌의 일본.아르헨티나.프랑스.미국 등 5개국 순회공연의 일환이다. 라카나 마놀리가 연출과 무대 디자인을 맡고 안토니아 치프로네, 미나 타스카 야마자키가 초초상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미 해군 장교 핑커톤은 '하인을 포함해 집을 9백99년간 임대하고 결혼 계약은 언제든지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불평등 계약을 초초상과 한 후 끝내 그녀를 버리고 만다. 그래서일까. 그의 고향인 미국에선 '나비부인'이 유난히 자주 상연되고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선 1907년 이래 진주만 공격과 제2차 세계대전 때만 제외하고는 거의 매년 공연되고 있다.

이에 반해 일본에선 '피해의식'때문에 자주 상연되지 않는다. 일본 여성이 사무라이처럼 자결하는 대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14년 일본 초연에서도 나비부인의 자결 장면은 삭제됐다. 무엇보다도 일본을 유럽인의 시각으로 본 것이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이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후에는 더욱 '납득하기 힘든 작품'으로 여겨기는 추세다. 세계 무대에선 오히려 중국 출신 성악가들이 나비 부인 역으로 맹활약 중이다.

일본 국가'기미가요'가 삽입되고 기모노가 등장해 반일 감정을 자극해서일까. 국내 초연도 70년에야 이뤄졌고 국립오페라단은 단 한번도 공연하지 않았다. 국내에서 '나비부인'을 가장 자주 제작한 오페라단은 이번 푸치니 페스티벌을 유치한 국제오페라단(단장 김진수). 84년부터 6회 제작했다.

오는 6월 막이 오르는 베로나 야외 오페라 페스티벌도 '나비 부인'의 새 프로덕션을 선보인다. 1993년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에서 첫선을 보인 로버트 윌슨의 연출은 노(能)를 연상케하는 절제된 동작과 미니멀리즘 무대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다음달 LA 오페라에서도 초청을 받았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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