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사건」 안일한 검찰대응/정철근 사회1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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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8년 10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월스트리트의 한 주식매매 전문가와 짜고 내부정보를 이용,증권을 부정거래한 드렉셀사에 대해 내부자거래 혐의로 수사를 의뢰했다. 이에 따라 수사에 착수한 미 법무부는 수사의뢰를 받은 내부자거래 부분뿐 아니라 집단폭력·부패조직법을 추가 적용해 드렉셀사를 기소해 버렸다.
미 법무부가 84년 제정한 「내부자거래규제법」에 따르면 위반자의 「고의성」이 없더라도 「절차상의 잘못」이 확인될 경우 민사상의 제재외에도 예외없이 기소권을 발동할 수 있게 돼있다. 미 법무부가 금융기관의 부정에 대해 이렇게 가혹한 까닭은 무엇보다 건전한 시장경제질서가 지켜지기 위해서는 정보·자본을 마낳이 소유한 강자,즉 개인투자자보다는 기관일수록 엄격한 책임과 준법의무가 뒤따라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외환은행 한국통신 입찰서류 조작사건과 관련,은행감독원의 고발이 접수되는대로 수사에 착수하겠다던 검찰은 은감원이 25일 오후 형사고발 방침을 철회하자 수사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말았다.
검찰 관계자는 『입찰서류 조직사실은 인정되나 피해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다 관련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지도 않아 인지 수사에 나설만한 사안은 못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사건이 넘어올 것으로 예상,법률검토까지 끝냈던 검찰은 『외환은행의 대외신용도를 감안했으며 전문기관(은감원)의 견해도 존중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형사고발을 철회한 은감원 역시 외환은행의 업무방해혐의에 대해선 인정하고 있어 이 경우 반드시 고발이 있어야 수사권을 발동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은감원은 외환은행이 전산조작으로 입찰을 포기함으로써 그 액수만큼 국유재산 매각액이 줄어드는 피해를 냈으며,이 과정에서 피해자(재무장관)의 사전승낙이 없었으므로 업무방해죄의 요건을 모두 충족시킨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은감원의 유죄판단에도 불구하고 단지 고발이 없다는 이유로 추가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검찰의 태도는 「고의성」이 없더라도 금융거래의 정상적인 절차와 규정을 어길 경우 기소를 하게 돼있는 미 법무부의 방침과 대조된다.
하루 한건꼴로 내부자거래 행위가 일어나고 있지만 88년이후 적발건수가 40여건에 불과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같은 검찰의 소극적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검찰은 국내 금융시장의 무질서가 감독·수사기관의 안일한 대처에서 비롯됐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귀기울이도록 충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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