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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전쟁가능성 희박”/미국제전략연 테일러부소장이 가서본 북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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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불바다」 발언은 흥분때문” 거듭 해명/북미 대화 이달에 재개할 것으로 확신/김일성 놀랄만큼 건강… 밥먹을 때 침흘리지 않아
북한 김일성주석의 82회 생일을 기해 지난 12일부터 19일까지 평양을 방문했던 미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소(CSIS) 윌리엄 테일러 부소장은 북한이 곧 추가사찰도 받고,미국과 대화도 재개할 것이라고 매우 낙관적인 견해를 보였다.
네번째 북한을 방문한 테일러 부소장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단독인터뷰에서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강조했다.
○최대한 양보얻기
다음은 테일러 부소장과의 회견요지.
­이번 평양방문에 대한 전반적 소감은.
『이번 북한방문의 목적은 북한의 닫힌 사회를 TV를 통해 외부에 알리려는데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두개의 TV매체에 북한이 익숙하게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CNN과 NHK가 동행했다.
이번에 북한은 나름대로 소득이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력한 두 방송매체와의 접촉기회가 그것이다.』
­유엔안보리와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북한에 추가 핵사찰 수락을 촉구하고 있으나 북한은 추가사찰은 거부하면서 미국과의 대화를 희망하고 있다. 이번 방문을 통해 느낀 북한측의 입장변화가 있다면.
『평양체류중인 지난주 북경에 있는 미 고위당국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나는 전화통화에서 북한이 대화에 응할 자세가 돼있다는 점을 얘기했다. 북한체류기간중 한국정부는 남북특사교환을 전제조건에서 철회했다. 이같은 조치는 한국이 실질적 대화를 할 용의가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북한이 긍정적 태도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얘기해주었다. 김일성주석을 비롯,조선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위원회 김용순위원장과 인민무력부 김영철소장에게 지금이 바로 북한이 뭔가 제안을 할 시점이며 IAEA가 북한에 다시 입국토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북한이 IAEA 추가사찰을 거부하면서 미국과 협상하겠다는 것은 무슨 의도라고 보는가.
『북한은 영변의 미신고시설 2곳은 IAEA 사찰과 분리하고,이 두곳을 이용해 가능한한 많은 것을 얻어내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다면 북한­IAEA와 북한­미국간 접촉이 조만간 재개되리라는 시사를 받았나.
『북한측 태도변화는 2∼3일 이내에 이뤄질 것으로 본다. 오늘 아침 평양을 떠나면서 확신을 갖게 됐다. 하지만 내 판단이 빗나갈 수도 있다. 미­북한 대화재개는 한국의 협조하에 이뤄지겠지만 늦어도 4월안에 재개될 것으로 확신한다. 물론 개인적 판단이지만 강한 인상을 받았다.
한가지 전제조건은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가 이뤄지기전에 IAEA의 사찰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미국,특히 미 언론들이 나서서 대화에 전제조건을 붙이는 것은 큰 잘못이다.』
­김일성은 영변의 미신고시설 2곳은 군사시설이라며 어떤 사찰도 받지 않겠다고 천명했고,한스 블릭스 IAEA 사무총장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 능력평가를 위해선 반드시 사찰해야 한다고 했다.
『김영철소장은 이 지역이 군사시설인 만큼 IAEA의 핵사찰과 무관하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어느 누구든 이 지역을 보고 싶다면 보여줄 수 있지만 대신 한국의 군사시설 2곳을 북한이 사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얼마전 나는 미 합참의장에게 미국이 군산·오산 등 남한지역 미군기지 사찰을 왜 허용하지 않는지를 물었다. 그의 답변은 적군이 우리 뒷마당에서 노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는 한 어떠한 성과도 얻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북한은 이를 최대협상카드로 활용할 의도라는 느낌을 받았다.
­김일성은 북한 핵문제로 인한 한반도 긴장상태를 어느 정도로 인식하고 있나.
○경제적 도움원해
『김일성은 물론 김영철소장 등 그의 참모들도 전쟁이 나면 자신들이 패배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 역시 걸프전의 예를 들어가며 수차례 전쟁의 위험성을 얘기했다. 북한은 전쟁이 터지면 서울·평양 모두 폐허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정말 전쟁을 원치 않았다. 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기술·자본·경영경험·합작회사 도입 등 실질적이고 경제적인 도움이다. 문제는 그들이 이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북측 대표가 어떻게 「서울 불바다」와 같은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할 수 있었나.
『김일성·김영철소장과 만나 수차례 그 사실을 물었다. 그들은 남측의 협상대표들이 인내심 많고 온건한 성격을 소유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으나 마지막 협상에서 밀어붙이기식 강압적 태도를 보였으며 북한 대표는 이에 무척 화가 났다고 했다. 그 결과 즉흥적으로 지근거리인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는 발언을 하게 됐다고 했다.』
­김일성의 방미의사 표명은 액면 그대로인가. 아니면 그 진의는.
『그는 92년이후 계속해서 나에게 미국에 가고 싶다는 뜻을 피력해왔다. 이번엔 미국에 가서 사냥도 하고 낚시도 하고 싶다고 했다. CNN 부회장이 어딜 가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김일성이 선뜻 생각이 나지 않는 것 같아 나는 곰사냥과 낚시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로키산맥 여행을 권했다. 김일성은 지금이라도 미국이 공식적으로 자신을 초청한다면 갈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다.』
○로키산 사냥 권유
­김일성의 북한경제에 대한 인식은.
『그는 북한이 처해있는 경제난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으며 해결책에 대한 방안을 갖고 있다. 지난해 한국과 일본이 겪었던 농작물 냉해를 얘기했으며 전국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통계수치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동남아와의 접촉강화를 경제난 타개의 구체적 해결방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남남협력을 통한 타개책이다. 그는 「우리를 너무 압박하지 마라. 우리는 독자적으로 살아갈 능력을 어느정도 갖고 있다. 이런 사실을 전세계에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김정일후계체제에 대한 김일성의 견해는.
『많은 사람들이 김정일을 후계자로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점을 제기했다. 그러나 그는 김정일이 일어선 것은 본인의 두발로 일선 것이지 자신의 후광을 업고 부상한 것은 결코 아니므로 이는 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북한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에 동의하고 있었다. 때문에 김정일이 정권을 인수하면 정변이 일어날 것이라는 등의 예측은 잘못된 것이다.』
­김일성을 얼마동안 면담했는가. 그의 건강상태는.
『1시간의 식사에 이어 1시간45분동안 면담했다. 김일성의 건강은 놀랄 만큼 좋았다. 우리 일행을 접견하는 동안 이곳 저곳을 거닐기도 했고,두뇌도 아직까지는 명석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오른쪽 목뒤의 혹은 2년전에 비해 두배로 커졌지만 악수를 하면서 젊은이들을 끌어당길 만큼 튼튼한 체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식사도중 술을 권유했더니 「너무 늙어 마실 수 없다」면서 입에 대는 시늉은 했다. 김일성이 왜 혹제거수술을 하지 않는지 통역에게 살며시 물었더니 혹은 건강에 전혀 지장이 없으며 82세의 고령을 감안할 때 수술 자체가 신경을 건드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했다.
김일성은 종종 젊은이들과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이는 선전효과를 노린 것이긴 하지만 그들과 대화에서 여과되지 않은 여론을 듣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모월간지가 김일성이 음식을 먹을 때 침을 흘린다는 등의 보도를 했는데 직접 목격한 바로는 잘못된 것이다.』
­이번 방북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사실인가.
『없었다. 클린턴 대통령을 만난 적도 없고 대통령이 나를 알지도 못하는데 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알 수 없다.』
­김일성이 클린턴 또는 김영삼대통령에게 전달해달라고 한 친서나 메시지는 없었나.
『그 질문엔 답변을 않겠다.』
­이번에 돌아본 지역은.
『북한의 전역을 볼 기회가 있었다. 중국과 국경지역은 물론 원산과 개성,그리고 비무장지대내 마을인 판문점도 들러 많은 사람과 만났다.
불바다 발언이 문제가 된 이후 평양은 전혀 새로운 변화를 느낄 수 없었고 이전처럼 생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내 생각으론 정부 고위관리들의 「말의 전쟁」에 불과했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테일러 부소장의 견해는.
『북한 지도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론 핵이 유일하다. 반면 미국이나 일본·한국은 비교적 선택의 폭이 넓다. 따라서 북한은 핵카드를 사용해 가능한 최대한 양보를 얻어내려 하고 있다. 북한이 원하고 있는 경제원조뿐 아니라 체제인정·관계개선 등을 한·미·일 등이 먼저 수용하는 방법도 있다. 그래도 그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다시 거둬들이면 된다.』<북경=문일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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