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돈 지원한다고 이공계 살아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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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공계를 살리기 위한 정부와 민간 부문의 노력은 당연하고도 바람직하다. 국가를 지탱하는 힘은 궁극적으로 이공계 인력이 이끌어나가는 산업의 생산 능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는 대책을 보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미봉책이어서 매우 걱정스럽다.

과학기술부와 산업자원부는 올해 1백억원을 들여 이공계 대졸 미취업자 3천여명의 채용을 지원키로 하고, 중소기업에 6개월간 1인당 월 60만원씩 보조하는 방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이는 19만명에 이르는 청년실업의 일부분을 구제할 수는 있을지언정 이공계 기피현상 타파와는 거리가 멀다.

채용 후 반년이 지난 뒤에 기업체가 해고할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국가의 장래를 고려해 이공계 활성화를 위한 진지하고도 실효성이 있는 정책을 수립한 것인지, 아니면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행정을 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그동안 정부의 이공계 유인책은 다양하고 예산도 뒷받침한 것이서 더 이상의 방안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올해 대학 신입생 5천3백명에게 등록금 전액을, 같은 규모의 재학생에게 2백5억원을, 대학원생 1천5백명에게 4백만원씩 지급한다. 인문사회계열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는 혜택인 셈이다. 그런데도 우수한 고교생은 죽어라 하고, 이공계 대학생은 자퇴하고 의대와 한의대에 도전하는 세태는 학비지원만으로는 이 풍조를 꺾을 수 없음을 입증한다.

이공계 지원책도 좋지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대학 진학 단계가 아닌 중등교육에서 직업교육을 강화해 의대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일이다. 우수 고교생이 부모와 교사의 권유에 따라 안정된 수입이 보장된다는 이유로 의대와 한의대에 진학하는 것은 다채로운 직업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이다.

초.중.고생에게 복잡다단한 생산.정보산업의 실체를 교육해 직업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을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특히 물리학.화학.수학 등 기초과학의 중요성도 가르쳐야 한다. 또 실업.정보계통 고교를 가더라도 무궁한 앞길이 열려 있음을 현실로 보여주어야 한다. 이런 기반이 마련될 때 이공계는 자연스럽게 되살아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