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in뉴스] 재주는 한국이 부리고 돈은 일본이 챙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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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해 이후 한국 조선업은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한국은 지난해 전 세계 조선 수주량의 39.2%를 차지해 세계 1위였습니다. 올해도 상반기에만 322억 달러를 수주했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가 늘어난 것입니다. 앞으로 4년치 일감을 벌써 확보한 셈이지요. 선박 수출도 지난해 24.8% 늘어난 데 이어 올해도 7월까지만 28.5%가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뭐든지 너무 잘되면 부작용도 있게 마련인가 봅니다. 배를 만들자면 쇠로 된 두꺼운 강판(후판)이 꼭 필요합니다. 국내 조선업이 워낙 호황을 누리다 보니 세계 4위 철강회사인 포스코가 물량을 다 대지 못합니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같은 국내업체가 설비 증설을 서두르고 있지만 조선용 후판은 앞으로도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갈 형편입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이후 일본에서의 수입이 많이 늘었습니다. 자동차용 철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올 들어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가 계속 불어나고 있는 주된 원인도 여기에 있습니다.

 철강제품뿐만이 아닙니다. 석유화학과 반도체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한국의 수출이 늘어나면 일본산 소재·부품 수입도 같이 늘어납니다. 석유화학은 문제가 조금 더 심각합니다. 일본은 한국으로부터 나프타라는 석유화학 원료를 수입해 각종 소재로 만들어 한국으로 역수출해 왔습니다. 그런데 중국이 몇 년 전부터 석유화학 공장을 대거 증설하면서 이 공생관계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일본이 중국산 나프타 수입을 늘리면서 한국의 대일본 석유화학 수출이 눈에 띄게 준 거죠. 반면 일본산 석유화학 제품 수입은 계속 늘고 있습니다.

지난달 20일까지 한국의 대일본 수출은 10.8%가 감소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대 일본 수입은 8.6% 늘었습니다. 20일 동안 무역수지 적자는 17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대일 무역 역조는 올 들어서만 172억 달러입니다. 이 추세대로면 올해도 대일 적자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것은 물론 300억 달러도 넘볼 전망입니다. 재주는 한국 기업이 부리고 엽전은 일본 기업이 챙기는 일이 언제까지 되풀이돼야 하는지 걱정입니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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