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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어린이책] 천재가 남긴 자동인형 나 혼자 비밀 풀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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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위고 카브레 1, 2
브라이언 셀즈닉 글·그림, 이은정 옮김, 꿈소담이
각권 264∼288쪽, 각 권 9500원, 초등 3학년 이상

SF영화의 선구자이자 세계 최초로 종합 촬영소를 만들었던 프랑스 영화감독 조르주 멜리에스(1861∼1938). 그는 영화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었지만, 살아 생전 영화(榮華)를 누리지는 못했다. 1923년 그는 파산했고, 그가 만든 500여 편의 영화필름 중 상당수가 신발공장 재료로 팔려간다. 그 이후 멜리에스는 파리 몽파르나스 역에서 장난감과 사탕을 팔며 생계를 이어갔다.

책의 저자는 멜리에스의 흑백 무성영화 ‘달세계 여행(1902년 작)’을 본 뒤 그 영화를 만든 사람에 대한 책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무려 10년 동안 구상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자동인형의 역사를 다룬 책 게이비 우드의 『에디슨의 이브』 중 한 장(章)이 멜리에스에 대한 이야기였다. 멜리에스는 자신이 모은 자동인형들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박물관에 기증했으나, 박물관에 불이 나 모두 타 없어졌다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실제 역사다. 논픽션이었다 하더라도 상당히 흥미진진했을 내용이다. 저자는 여기에다 한 소년이 멜리에스가 남긴 자동인형을 발견하는 상상을 했고, 이 책은 그렇게 시작된다.

주인공은 위고 카브레. 열두 살짜리 기차역 시계지기 소년이다. 시계수리공인 위고의 아빠가 어느 날 박물관 다락에서 고장 난 자동인형을 찾아냈다. ‘자동인형이 제대로 작동하면 무슨 글자를 쓸까’ 위고와 아빠는 기대에 부풀어 인형 수리에 몰두한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박물관 화재로 아빠는 숨지고 만다. 위고는 잿더미 속에서 고치다 만 자동인형을 가져와 아빠가 준 수첩을 토대로 혼자 수리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위고는 부품을 구하기 위해 기차역 장난감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주인 할아버지에게 들켜 아빠의 수첩을 빼앗긴다. 수첩을 돌려받기 위해 장난감 가게에서 일하게 된 위고. 할아버지의 손녀 이사벨의 목에 걸려 있던 열쇠가 아무래도 자동인형에 맞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를 훔친다. 아니나 다를까. 열쇠를 꽂자 자동인형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바로 영화 ‘달세계 여행’의 하이라이트 장면. 위고는 인형이 그림 밑에 적은 서명을 보고 깜짝 놀란다. 바로 할아버지의 이름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할아버지가!

저자는 원래 삽화가로 유명하다. 이 책에서도 그는 연필 드로잉 삽화를 이야기 전개의 핵심 요소로 사용했다. 글 사이사이 그림이 끼어 있는 형식이 아니라 그림을 최대 22장 연속 배치하는 파격을 택했다. 마치 영화의 한 컷, 한 컷처럼 책장을 넘기면서 점점 줌인되거나 줌아웃되는 독특한 구성이다. 자동인형과 할아버지의 비밀을 하나 둘씩 파헤쳐가는 긴장감이 그림 때문에 더욱 강해진다.

 멜리에스가 영화에 카메라의 눈속임 기법을 접목시켰듯, 이 책의 저자는 종이책에 그림의 특수효과를 덧입힌 셈이다. 내용도 물론 재미있지만, 어린이 책으로 보기 드문 ‘팩션 추리 소설’인 데다 형식도 독창적이어서 아이들의 독서 지평을 넓히는 데 한몫 할 듯싶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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