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논술의힘] 마빈 해리스 『문화의 수수께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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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빈 해리스는 소가 없으면 생활하기 힘든 물질적 환경으로 인해 소를 신성시하는 힌두권의 톡특한 문화가 생겼다고 보았다. [중앙포토]

문화는 일종의 습관이다. 김치 문화는 한국인의 먹는 습관이고, 한복 문화는 옷 입는 습관이며, 장례 문화는 죽음을 처리하는 습관이다. 영남에는 영남의 김치 문화가, 호남에는 호남의 김치문화가 있듯 나라 안에서도 습관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차이와 다름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이 속한 문화를 기준으로 세상사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미국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는 독선적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마빈 해리스는 힌두교를 믿는 인도 농부들이 굶주리면서도 암소를 잡아먹지 않는 것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 비난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근시안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육식을 금하는 동양의 정신주의니 생명존중이니 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머쓱해질 정도로 마빈 해리스는 철저하게 그 원인을 물질적인 데서 찾는다. 먼저 트랙터 같은 현대식 농기구를 살 여유가 없는 가난한 농민에게 소는 유일한 농경 수단이다. 또 암소에서 나오는 젖은 각종 유제품의 원료로, 쇠똥은 비료와 연료로 사용된다. 이렇게 유용한 소를 당장 배고프다고 잡아먹는다면 장기적으로 생계가 막연해진다. 마빈 해리스는 바로 여기에서 금기가 생겨난다고 한다.

그는 이슬람교도나 유대인,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지역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도 설명한다. 돼지는 소처럼 풀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동물이다. 곡식을 주로 먹기 때문에 인간과 먹이를 두고 직접 경쟁한다. 또 돼지는 보호막 역할을 하는 털도 없고 땀을 흘려 체온을 조절도 할 수 없어, 깨끗한 진흙 속에서 뒹굴며 체온을 유지해야 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기후가 건조한 중동에서는 먼 거리를 몰고 다니기 힘들다. 결국 중동 지방은 식용으로 충족할 수 있을 만큼의 돼지를 사육하기에 생태학적으로 적절하지 않다. 소규모의 사육은 돼지고기에 대한 유혹만 크게 하므로 아예 돼지고기의 식용을 금지하고 양이나 염소 등을 치는 데 전력을 다한 것이다.

 

 수렵과 채집에 의존하는 집단에는 생태계가 지탱할 수 있는 적정한 인구수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생산 활동에 열중하다 보면 생태계가 황폐해져 생산량이 줄어들게 된다. 이럴 경우 해결책은 영양공급을 줄이거나 인구를 줄이는 장치를 마련할 수밖에 없다. 이때 피임이나 낙태 같은 안전장치가 없던 원시인들은 금기와 규제, 전쟁, 유아살해 등 제도화된 인구 축소 수단을 활용했다는 것이 마빈 해리스의 설명이다.

 물론 유아살해가 옳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을 야만이라고 보지 말라고 저자는 주문한다. 효과적인 피임법과 낙태법이 개발되기 전에 얼마나 많은 아동살해가 자행되었는지, 18세기의 영국사를 들여다보라고 충고한다. 서구는 선이요, 비서구는 악이라는 등식이 고루한 편견이라는 질타가 매섭다.  

김보일(배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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