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 심려, 정부에 부담 줘 죄송"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유튜브에 아내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동영상을 올렸던 류행식씨가 두 자녀와 함께 2일 경기도 안양 샘병원에서 피랍됐던 아내 김윤영씨와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강정현 기자]

아프가니스탄 무장세력 탈레반에 납치됐다 풀려난 한국인 19명이 2일 가족의 품에 안겼다. 7월 13일 아프가니스탄 해외 봉사활동을 위해 출국한 지 51일 만이다.

전날 대한항공 KE952편으로 경유지인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를 떠난 이들은 이날 오전 6시35분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초췌한 모습이었다. 남자들은 수염이 텁수룩했고, 여성들은 머리를 다듬지 못한 채 지친 표정이었다.

피랍자들이 입국 수속을 마치고 인천공항 1층 입국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고(故) 배형규 목사의 형 신규(45)씨와 석방자 김지나씨의 오빠 김지웅(36)씨가 배 목사와 고(故) 심성민씨의 영정을 들고 나란히 섰다. 김만복 국정원장과 일명 '선글라스 맨'이라 불리는 국정원 직원도 한동안 자리를 함께했다. 유경식(55)씨가 피랍자 대표로 소감문을 읽었다. 그는 "사랑을 나누기 위해 갔는데 국민에게 심려를 끼치고 정부에 큰 부담을 줘 대단히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함께 돌아오지 못한 배형규 목사님과 사랑하는 심성민씨에게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덧붙였다.

소감문이 낭독되는 동안 나머지 일행은 모두 고개를 떨어뜨린 채 가끔씩 흐느꼈다. 기자회견장에 나온 일부 기독교 신자는 이들에게 박수를 쳤다. "형제자매들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으니 고개 숙이지 말라"고 외치기도 했다. 반면 한 남성은 석방된 피랍자들에게 계란을 던지려다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유씨는 "석고대죄를 해야 마땅하지만 40여 일간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온 만큼 안정을 취하는 대로 모든 것을 설명하겠다"는 말로 회견을 마무리했다. 이들은 일행과 함께 경기도 안양 샘병원으로 향했다. 오전 8시10분쯤 병원에 도착한 석방자들은 지하 1층 샘누리홀에서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과 부둥켜안았다. 지난달 17일 먼저 풀려나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김경자(37).김지나(32.이상 여)씨가 합류했다. 김경자씨는 자신에게 석방을 양보했던 이지영(36.여)씨를 만나 힘껏 부둥켜안고 울었다.

인터넷에 아내 김윤영(35)씨의 석방을 촉구하는 동영상을 올렸던 류행식(36)씨도 감격의 해후를 했다. 김씨는 남편에게 "아프간에서 아이들을 생각하며 잘 참았다. 당신, 동영상도 찍었다면서"라고 웃으며 말했다. 김씨의 딸(8)은 엄마와 새끼손가락을 걸며 "이제부터는 다른 곳에 가지 말라"고 약속을 하기도 했다.

고 배형규 목사의 형 신규씨는 상봉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연방 "다행이다"라고 되뇌었다. 그는 "가족들이 불편해할까 봐 상봉장에는 들어가지 않았다"며 "모두 풀려났으니 미뤄온 배 목사의 장례를 곧 치르겠다"고 말했다.

석방자들은 오후부터 병원 3층 '전인치유병동(내과.신경정신과.상담과 영적 치료를 함께하는 병동)'에 입원해 2주일간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 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샘병원 차승균(52) 원장은 "일부의 피부병 증세를 빼놓곤 대체로 양호한 편이지만 정신적 충격이 큰 만큼 5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집중 치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샘물교회 박은조 담임목사는 석방 인질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 예배를 집도한 뒤 "인질들이 개종을 거부하다 구타당하고, 여성들은 성폭행 위협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박 목사는 또 "(정부의)구상권 청구와 관련해 교회도 대응자료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강갑생.이종찬 기자,

안양=정영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