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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가마 안의 천 냥’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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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가난한 사윗감을 놓고 고민하던 최성연 여사가 딸을 앞에 두고 결단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내가 딸이 둘이면 하나는 부잣집에, 하나는 인격을 보고 하겠는데 달랑 하나밖에 없으니 인격을 보아야겠다”면서. 지금은 사윗감이 가진 게 없지만 장래를 기대해 보자는 얘기였다. 훗날 큰 부자가 된 김수근 대성그룹 창업주와 대구 명망가 여귀옥씨의 혼인은 이렇게 성사됐다.

 최 여사의 사윗감 선택에서 보듯,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 결혼의 칼자루는 신부 쪽이 쥐고 있었던 모양이다. 결혼의 ‘혼(婚)’에 ‘어두울 혼(昏)’자가 들어 있는데, 고구려 때는 혼인식을 저녁에 열었던 관습이 있었다. 저녁 무렵이 되면 신랑은 신부 집 문 밖에 꿇어 앉아 큰절을 하며 신부와 동침을 허락해 달라고 애걸한다. 그러면 고자세의 장인과 장모는 못 이기는 척 밤 늦게야 미리 마련한 방에 사위를 들인다. ‘장가든다’는 말은 이 같은 풍습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와 부인 김윤옥씨 간의 결혼 스토리가 화제다. 부유한 김씨의 부모는 가난한 월급쟁이 이 후보보다 먼저 딸과 맞선 본 검사를 사위로 삼고 싶어했다. 그때 김씨는 같은 동네에서 ‘도사’로 통하는 할아버지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검사에게 시집 가면 쌀 50가마만 들어오지만, 그 월급쟁이에게 시집 가면 수백 섬이야.”
 김씨의 선택은 탁월했나 보다. 나중에 월급쟁이가 대기업 사장과 회장이 되더니, 서울시장도 역임했으니 말이다. 그 가난했던 월급쟁이가 지금 대한민국 사윗감 매물로 나와 있다. 칼자루를 쥔 유권자들의 간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 후보는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 줄, 장래가 촉망되는 사윗감일까.
 잠시 시곗바늘을 6년여 전으로 되감아 2001년 7월 26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김병주 국민·주택은행 합병추진위원장은 “합병은행장으로 김정태 주택은행장이 선출됐다”고 발표했다. 그 몇 시간 전, 이근영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을 취재한 적이 있다. 그는 김정태씨가 통합은행장이 됐다고 확인해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막상막하의 대결에서 외국계 대주주들이 김정태를 선택했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이들이 미국 주식시장에 주택은행을 상장시켰고, “월급은 단 1원만 받겠다”고 말하는 등 화제를 뿌렸던 김정태씨에게 주목한 것이다. 이때 주주의 가치를 중시한다는 의미의 ‘김정태 주가’라는 신조어가 탄생했고, 이후 통합 국민은행은 국내 최대 은행으로 승승장구했다.

 이처럼 은행장 한 명을 선택하는 데도 주주들은 “과연 저 사람이 나에게 이익을 줄까”라고 따진다. 하물며 우리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대통령을 뽑는 일임에랴. 이명박 후보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가장 인기가 좋은 정당의 후보다. 여권 후보가 오리무중인 가운데 대통령 자리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 사람이다. 더 이상 대운하 공약을 둘러싸고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는 일부 ‘이명박 수혜주’만의 후보가 아니다. 그러기에 몇몇 주주가 아닌 주식시장 전체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여겨본다. 유권자 모두는 그의 말 한마디에 주목한다. 행여 무리수를 둬서 시장에 불안을 주지는 않을까 염려하기도 한다.

 “경제 하나만은 확실히 살려내겠다”고 장담하는 이 후보. 이미 한 가정에서 ‘쌀 50가마’의 사윗감을 물리치고 ‘수백 섬’의 사위가 됐던 그가 이제 우리나라를 짊어질 ‘쓸모 있는 가마 안의 천 냥’이 될 수 있을까. 최성연 여사는 사윗감 김수근이 나중에 큰 부자가 되리라고 확신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먼저 본 것은 그의 비전과 신뢰였다. 과연 이 후보는 생애 최대의 도전에서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비전과 신뢰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일까.

정선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