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 '투명화'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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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중국이 투명해지고 있다. 감추는 게 능사라고 생각하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문서가 공개되고 관리들의 뒷얘기 소개도 잇따른다. 또 정책 입안에 민간 참여가 시작되고 있다. 보다 많이 인민에게 알리고 보다 많이 인민의 소리를 듣겠다는 취지다. 리더 한명에 의한 인치(人治)에서 제도화 시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민간의 정책 입안 첫 참여=중국은 지난해 12월 제11차 5개년 계획(2006~2010년)의 정책 연구 과제와 관련, 민간을 대상으로 공개 입찰을 실시했다. 건국 이후 처음이다.

예전엔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던 정책을 민간 학자들에게 프로젝트 형식으로 맡겨 전문성과 투명성 제고를 함께 꾀하겠다는 것이다. '금융개혁''사회보장' 등 56개 과제에 3백50건의 신청이 몰리는 성황을 이뤘다. 그 결과 베이징(北京)대 중국경제연구센터 린이푸(林毅夫)주임과 칭화(淸華)대 국정(國情)연구센터의 후안강(胡鞍綱)주임 등 쟁쟁한 학자들에게 사업이 낙찰됐다.

胡주임은 "불투명한 과거 정책 결정 관행이 투명화로 나아가는 대사건"이란 평가를 내리고 있다.

◆외교 문서 공개=중국은 지난 16일 '외교부 문건 열람처'를 개설했다. 30년이 지난 문건은 공개할 수 있다는 문건법 규정에 따라서다. 1차로 한국전쟁 등이 포함된 1949~55년 사이의 문건 4천5백45건을 개방하고 있다. 중국인은 물론 외국인 또한 열람과 복사가 가능하다. 극비 문건이나 대외 관계에 아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건은 제외됐다.

그러나 문서 공개 자체가 건국 이후 처음 있는 일이어서 의미가 크다. 안정적인 경제 성장이 대국의 자존심을 회복시켜 정보 공개에 대한 자신감을 부추기고 있다는 평가다. 현재 보관 중인 32만건의 문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개방될 예정이어서 큰 기대를 모은다.

◆대학 진출 및 회고록 출간=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담판을 주도했던 룽융투(龍永圖)전 대외경제무역부 부부장이 올해부터 상하이(上海) 푸단(復旦)대 강단에 선다. 또 외교부 대변인을 역임한 차관급의 우젠민(吳建民)은 외교학원 원장으로, 쓰촨(四川)성 부성장을 지낸 리다창(李達昌)은 시난(西南)경제대학 교수로 지난해부터 활동 중이다.

공직자들이 현직을 물러난 즉시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은 거의 드문 일이다. 요직에서 물러난 관리들이 정협(政協) 등 한가한 부서로 자리를 옮기던 것과는 딴판으로 자신들의 집정 경험을 후학들에게 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중국 외교의 대부(代父) 첸치천(錢其琛)전 부총리는 외교 비화를 모은 '외교십기(外交十記)'를 펴냈고 리펑(李鵬)은 총리 시절 심혈을 기울였던 싼샤(三峽)댐 건설 관련, 리란칭(李嵐淸)전 부총리는 교육 개혁 관련 내용을 역시 책으로 엮었다. 중국 지도자들이 은퇴하자마자 책을 내는 것도 처음이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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