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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은 언제나 약자의 무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5호 14면

이수영 자유기고가

역사를 바꾼 편지

편지는 보통 개인의 소식이나 용무를 전달하는 매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실상 편지는 사적인 것만은 아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친서 등의 외교문서, 정치적 포고, 규탄하거나 선동하는 공개 서한, 투서와 밀고, 발견에 대한 보고서 등의 공적인 편지들이 역사의 드라마틱한 페이지들에 첨부되어 왔다. 한 개인의 서한으로 출발했지만 더 이상 개인적일 수만은 없는 내용을 담고 도착한 많은 편지가 세계의 역사를 결정적으로 바꾸어놓기도 했다. 재미있는 경우는, 후대에 발견된 사적(私的) 편지가 역사의 진상을 드러내며 정식으로 인정된 기록을 뒤엎거나, 당연히 진실의 전달이어야 하는 편지가 거짓되거나 조작을 통해 역사의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을 만드는 때이다.

언론 매체나 전문 잡지가 없던 시대에 학자·예술가들 사이의 편지 교류는 종종 지적 결투의 양상도 띠면서 위대한 사상을 탄생시키고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이끄는 데 중요한 몫을 담당했다. 유럽의 살롱문화 시기 문인들, 20세기 세상의 반을 바꾸어놓은 이념이 만들어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서신 교환, 다윈·콜럼버스 등의 과학자·탐험가, 그리고 조선시대 성리학 발전의 정점을 이룬 퇴계와 고봉의 편지 교환이 그렇다.
정치적 서한이 역사에 미친 파장은 보다 직접적이다. 그중에서도 청나라 건륭제가 교역을 요구하는 영국 왕에게 보낸 서한, 페리 제독이 일본의 막부(幕府) 장군을 위협하는 편지 등 동양과 서양이 처음 만날 당시 오간 편지가 흥미롭다. “우리의 예법과 관습을 이국 땅에 습득시키기는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국왕이여, 너희가 보내온 공물을 짐이 받는 것은 아득히 먼 곳에서 보내온 정성을 생각해서일 뿐이노라. 너희 나라의 제품은 쓸모가 없노라.” 이런 서신으로 서양을 배척한 중국과 이를 받아들인 일본은 이후 근대화의 아주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마르틴 루터는 면죄부 판매와 교회의 부패에 반대하는 서한을 주교들에게 보내고 ‘95개조 반박문’을 공개함으로써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었다. 프랑스 혁명의 위협에 맞서 오스트리아에 도움을 청했던 왕비 앙투아네트의 편지는 반역죄로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근거를 마련한다. 글 하나로 황소의 난을 물리친 최치원의 ‘토황소 격문’, 침략자인 수나라 장군을 조롱하고 기를 꺾은 을지문덕의 ‘여수장우중문시’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이르노라,” 그리고 이방원이 정몽주를 회유하며 읊었던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와 서슬 푸른 답가 “백골이 진토 되어” 등도 우리 역사의 전환점을 선명히 기록한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편지를 통한 구명 운동이 대표적으로 보여주듯이 권력에 의해 박해받는 양심수를 위해 탄원하는 것은 편지의 오래고 중요한 정치적 기능이었다.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는 간첩으로 몰린 유대인 드레퓌스의 누명 사건에 맞서 대통령 앞으로 쓴 공개 서한 ‘나는 고발한다’ 때문에 위협당하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지만 양심적 지식인이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의 전범으로 역사에 깊이 각인되었다. “공적으로 권한을 부여받은 사법적 정의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나라도 그리하겠다고 나 자신에게 맹세했으므로 이제 진실을 말하려고 합니다. 나는 고발합니다.”

멕시코의 원주민 반란군 부사령관 마르코스는 말한다. “나의 직업은 전쟁을 하고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정치적 약자들이 강자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때로 총보다는 펜이었다. 전제 군주의 전횡을 견제했던 조선시대 상소문 제도도 마찬가지다. 인도의 네루에서 이탈리아의 그람시까지,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신영복의'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이르기까지, 옥중서신은 저항문학의 전통을 이루며 아름다운 문장으로 대중의 호응을 얻어냈다.

저항의 서한은 다만 위정자의 무릎을 꿇리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공기를 사고팔 수 있습니까? 우리와 땅은 한 가족입니다. 들꽃은 우리 누이입니다. 땅을 파는 것은 누이와 형제, 우리 자신을 파는 것과 같습니다.” 땅을 팔고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들어가라는 미국 대통령의 통보에 시애틀 추장이 보낸 편지는 문명세계가 자연에 대한 새로운 각성에 눈뜨도록 해주었다. 인도의 독립운동가 마하트마 간디가 비폭력 저항 중에 전 세계로 보냈던 평화의 메시지 역시 후대의 저항운동 방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정치사를 바꾼 가장 유명한 편지는 한 순진무구한 소녀에 의해 씌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는지. “링컨 아저씨, 수염을 길러보세요.” 계속 낙선의 고배만 마시던 링컨은 이 조언을 받아들여 수염을 길렀고 대통령에 당선되어 노예제 폐지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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