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오정' 눈물의 생존투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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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대기업에 다니는 崔모(40)씨는 최근 피부과에서 주름살을 제거하는 '매직 리프팅' 시술을 받았다. 피부 속으로 실을 연결해 얼굴 전체를 팽팽하게 올려주는 시술로 1회에 1백여만원이 든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미간에 보톡스 주사도 맞았다. 崔씨는 또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6개월에 6백만원이 드는 S사의 모발 관리 프로그램에 등록할 예정이다. 崔씨는 "나이가 들어보이면 퇴출 대상에 먼저 오른다는 얘기를 듣고 위기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른바 '사오정(45세 정년퇴직)'세대로 불리는 40대 남자 직장인들의 '생존투쟁'이 치열하다.

오랜 경기 침체에다 지난해 말부터 불고 있는 '명예퇴직 바람' 등으로 직장 내 위기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격증을 따거나 대학원에 다니는 등 실력을 업그레이드하고, '젊은 남자'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각종 성형외과.피부과 시술까지 받고 있다. '투잡스(직업을 두가지 갖는 것)'에 대한 투자와 사적인 인맥 관리는 기본이 되었다.

최근 강남의 피부과.성형외과에는 설 연휴를 이용해 검버섯 제거, 주름 치료 등 '회춘 시술'을 받으려는 40대 남성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SNU 피부과 조미경 원장은 "이달 들어 피부 관리, 보톡스 시술 등을 받으러 오는 남성이 하루 10여명에 달한다"며 "일부 남성은 성장호르몬을 입안에 뿌리는 등 다양한 치료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자격증을 따거나 어학.컴퓨터 등 자기계발에도 열심이다. 외국계 유통업체 재무부서의 李모(40)차장은 새해 들어 미국 공인회계사(AI CPA) 공부를 시작했다.

李씨는 "최근 입사한 후배들이 자격증을 갖고 있어 위기감이 들었다"며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진 지금, 자격증이 있으면 회사를 옮기는 데도 유리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외국계 식품업체의 부장으로 일하는 정모(41)씨는 요즘 밤을 새워가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지난해 말부터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컴퓨터 시험을 보게 했기 때문이다. 정씨는 "저녁마다 중학생 아들로부터 컴퓨터 개인과외를 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 전문 육서당 학원 오은주씨는 "최근 들어 40대 직장인 신규 수강생이 20% 정도 늘었다"며 "당장 자격증이 필요한 사람보다는 미래를 위한 '보험' 성격으로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인맥 관리도 중요해졌다. 외국계 회사 임원 조모(41)씨는 학연.지연.전 회사 인맥 등을 관리하느라 향후 한달 간 저녁 약속이 꽉 차있다.

조씨는 "요즘 헤드헌팅 업체에 이력서를 내놓지 않은 사람은 바보취급을 받는다"며 "한 회사만 믿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늘 바깥 채널을 열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헤드헌팅 업체 IBK 문형진 이사는 "최근 들어 40대 직장인들의 이직 상담이 부쩍 늘었다"며 "정년에 대한 보장이 사라지면서 자기계발에 대한 투자는 이제 '필수과목'이 되었다"고 말했다.

홍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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