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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사법시험 이대론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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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거의 모든 나라에 福券제도가 있다.근검절약이라는 일상적 美德으로는 경제적 도약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마지막 숨통을 터주는 제도다.
不勞소득의 射倖心을 조장한다는 도덕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복권제도는 자본주의 체제의 불가피한 부산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오히려 푼돈을 모아 큰 사업을 할 수 있는 이점 때문에 국가가 전면에 나서 복권사업을 주도한다.
그런데 복권제도를 법률전문가의 자격시험에 도입한 나라는 지구상에 단 한 나라,대한민국 뿐이다.세칭 「高等考試」또는 「司法高試」로 불리는 至高한 우리 나라의 사법시험은 단판 승부로 사회적 지위와 재력을 가장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는 사회적 복권제도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일단 사법시험에 합격만 하면 일생의 영화가 보장된다.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아무런 제약없이 이 시험의 원서를 살 수 있다.모든 국민이 주택복권을 살 수 있듯 법률전문가를 뽑는 이 시험의 응시 자격으로 法科 大學을 졸업할 필요도 없거니와 꼭 학교 문전을 기웃거릴 필요도 없다.아무리 여러차례 낙방해도 합격되는 순간까지 시험에 매달릴 수 있다.성실한 일상의 연속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신분상승을 이룰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한번쯤 품어봄직한 꿈이다.아무리 늦게라도 일단 합격만 하면 그간의 굴욕과 투자를 보상받고도 남기에.
실로 사법시험은 「코리안 드림」의 상징이다.당첨률이 낮을수록상금을 손에 쥔 사람의 카타르시스의 强度가 높듯 경쟁률이 높을수록 이를 통과한 합격자의 選民의식이 높아진다.객관적인 통계나상식을 기초로 한 기대값이 낮은 시도가 的中이 라도 하면 온 세상이 함께 선민의식과 카타르시스의 향연에 同參한다.언론도 「○顚○起의 신화」니 「인간승리의 사례」니 하며 이를 劇化시킨다. 法治국가에서 국민의 권리를 지켜줄 법조인이 이러한 공적 카타르시스 제도를 통해 생산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發想인지를 지적하는 사람은 드물다.너나 할 것 없이 사법시험病에 전염되어있기 때문이다.
사법시험은 기계적인 사실의 암송 분량에 의해 절대적으로 當落이 좌우된다.매년 2만명이 넘는 응시자중에 1천명 남짓한「大卒상식인」을 고른다는 객관식 1차시험은 그야말로 유치하기 짝이 없는 장학퀴즈식의 惡名높은 눈치와 암기력의 시험 이다.그러기에정규교육을 받지 않은,기억력이 탁월한 無學者도 꿈꿀 수 있다.
「논술시험」으로 명명한 2차시험은 오로지 장기간에 걸친 반복적작업을 통해 방대한 범위의 法理를 기계적으로 암기해야만 합격할수 있다.
법과대학은 고시學館으로 전락했고, 대학 圖書館은 고시원 讀書室로 주저 앉았다.法院을 知的으로 인도하고 감시해야 할 法學敎授는 수험교재의 남발에 혈안이 되어 있다.「冊놓고 쓴 冊」「混成模倣」의 인쇄물에 불과한 수험용 교과서를 낸 교 수가 권위자요,碩學이 된다.판사도,일반교수도 비웃을 뿐이라는 사실조차 모른채 출판사의 商魂에 장단을 맞춘다.시험교재가 아닌 전문서나 법학도의 안목을 넓혀주는 법학 교양서는 출판사조차 구하기 어렵다.법과대학의 외국어 강좌와 고전.교양 강좌는 개점휴업 내지는폐업 상태다.「인생을 복잡하게 만들 위험」이 있는 일체의 과목은 禁忌다.모두가 사법시험 때문이다.
法은 어른이 해야 하는 학문이요,실무다.법이란 인간의 공동생활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하는 수단이다.법은 인간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다루어야하는 제도적 장치요,무기다.미숙한 사람의 손에 맡기면 사회 전체가 위험에 빠진다.그런데도 우 리의 법학교육,법조인 시험,법조실무 모두가 기억력 위주로 나라의 法治를 맡기려 한다.외우는 전문기계,컴퓨터가 탄생한 이 시대에도 말이다. ***常識갖춘 專門人으로 법조인은 단순한 직업인이 아니다.나라의 선진화의 死活이 달린 직업이다.전쟁과 힘 대신 평화와질서가 지배하는 오늘은 法治의 시대요,법조인의 시대다.숨가쁘게바삐 움직이는 국제화 시대에 우리 국민의 일상 전반에 法과 秩序를 정착시키 려면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법률전문가가 필요하다.단순히 남의 말을 외우는 인간컴퓨터가 아닌,인간과 세상살이를아는 진정한 법률가가 말이다.
이대로의 사법시험을 고집하다가는 나라를 그르친다.다행스럽게도총무처에 사법시험제도 개선위원회가 구성된다는 소식이다.한마디로극소수의 복권당첨자 대신 상식을 갖춘 다수의 건전한 직업인을 뽑는 시험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서울大교수.法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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