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계이야기

선박 프로펠러의 기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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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자동차 가속 페달은 밟으면 밟을수록 엔진 출력이 올라가면서 엔진 과열이 일어날 때까지는 속도가 빨라진다. 선박의 경우는 어떨까? 처음에는 속도가 다소 올라가지만 엔진이 과열되기도 전에 큰 소음과 진동이 일어나면서 오히려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 바로 캐비테이션(cavitation) 현상 때문이다.

이 현상은 프로펠러 날개 표면의 물이 기체로 변해 커다란 기포처럼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물을 100℃ 이상으로 끓이면 기체 형태인 수증기로 변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온도를 올려 주는 것 말고도 압력을 낮추면 물이 기체로 변할 수 있다. 선박은 프로펠러가 날개 뒷면의 물을 빨아들여 앞쪽으로 밀어내면서 추진한다. 이때 물이 들어오는 날개 뒤쪽의 압력은 낮아지고 날개를 통과한 후 물을 밀어내는 앞쪽 부분에서는 압력이 매우 높아진다. 속도와 압력의 관계를 정립한 ‘베르누이 방정식’이라는 이론에 의하면 속도가 빨라지면 압력은 낮아지게 된다. 프로펠러를 고속으로 회전시키게 되면 날개로 들어오는 물의 속도가 매우 빨라지게 된다. 그럼으로써 날개 뒷면의 물의 압력은 더욱 낮아지게 된다. 물의 압력이 일정 범위 아래로 떨어지면 날개 표면의 물이 기체로 변하고 기포가 형성되는 것이다.

캐비테이션이 일어나면 물을 밀어주어야 할 프로펠러가 기체를 밀어내면서 충분한 힘을 얻지 못하게 돼 선박의 추진 효율이 급격히 떨어진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기포가 날개를 통과하면서 압력이 높아지고, 급격히 수축해 터지면서 프로펠러 표면에 충격을 주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선체에는 큰 소음과 진동이 발생하고 프로펠러의 표면이 침식되는 등 부작용이 일어나게 된다. 심하면 프로펠러의 날개가 항해 중 깨져나갈 수도 있다.

캐비테이션에는 공학적으로 물의 온도, 프로펠러 날개단면 형상 등 복잡한 요인이 관련되지만, 이 현상이 항해사에게 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무리하지 말고 제 속도로 가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선박은 무턱대고 속도를 높여 항해할 수 없고, 설계된 대로 적절한 운전상태를 찾아 순항해야 한다.

속도를 높이려다 효율이 떨어지고 부작용을 낳는 예는 우리 생활 속에서도 얼마든지 있다. 예를 들어 시장이 호황국면이 되어 무리하게 생산 속도를 높이려는 기업도 이러한 현상을 겪을 수 있다. 선박의 설계점과 같은 그 기업의 적정 생산능력을 넘어서면 효율이 떨어지고 품질이 저하된다. 프로펠러가 침식되듯 기업은 이미지가 손상돼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무조건적인 경제성장을 선(善)으로만 생각해 오던 우리로서는 다소 의아한 일이지만, 이러한 자연현상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중국 정부의 긴축정책도 이해할 수 있다. 너무 빠른 경제성장을 억제하기 위해 산업과 금융에 일부 충격을 주면서까지 시행하고 있는 중국 경제의 속도 조절은 향후 더 큰 충격을 미리 방지한다는 측면에서 현명한 정책으로 생각될 수 있다. 늘 ‘빨리빨리’를 외치는 우리로서는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빠른 속도, 기포(거품), 충격, 부작용 같은 단어들은 최근 몇 달간의 우리 증권시장을 떠올리게 한다. 짧은 기간 거침없는 속도로 상승했을 때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속도 조절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지금은 외국 발 악재로 폭락했다가 다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것이 속도를 적절히 조절하고 우리 경제의 체질에 맞춰져 가는 과정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울러 미래를 위해 건전한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들의 꿈도 순항하기를 바란다.

양종서 기은경제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