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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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길고 긴 겨울(37) 바다를 헤엄쳐서 섬을 빠져나가 도망쳤던 자가 잡혀 오기라도 하면 그때부터의 채탄작업은 더욱 가혹해졌다.허술하게 인부들을 관리하니까 이런 일이생긴다면서 그 앙갚음을 노무자들에게 했기 때문이었다.잡혀 온 당사자 는 초주검이 되게 고문을 당한 끝에 감금이 되었지만 어느 경우든 이래저래 남아 있던 인부들만 더 고달픈 나날을 맞지않을 수 없었다.
노름을 해서 빚을 졌거나 유곽에서 돈을 날린 일본 노무자들이더러 헤엄을 쳐서 섬을 빠져나가려다가 붙잡혀 오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이 경우도 조선인 징용공들에게 가혹한 사역이 내려지기는 마찬가지였다.어떤 경우든 도망자가 생기면 남 아 있는 노무자들에게 고통이 뒤집어 씌워지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성식이와 함께 숙소로 돌아오며 길남은 이 일을 명국이 아저씨에게 알려야 할지 어째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성식이가 먼저 도망을 친다면 자신들의 계획은 또 얼마쯤 뒤로 미루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그것이 몇달이 될지도 모른다.
방으로 돌아왔을 땐 고단한 몸을 누이고 어느새 하나 둘 잠 잘 준비들을 하고 있었다.
『사명당 사첫방이지,이게 방인가.젠장헐… 뜨끈뜨끈한 아랫목 생각이 절로 나누만.』 성식이 한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려서 명국의 옆에 잠자리를 하고 누웠던 길남이 가만히 그의 어깨를 잡아 흔들면서 물었다.
『고단하세요?』 명국이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왜?』 길남이 목소리를 낮췄다.
『좀 할 이야기가 있는데요….』 『넌 녀석아 내일 일 아니가? 아침 조면서,자야 할 거 아냐?』 『잠깐만 좀 나와 보세요.』 길남의 얼굴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던지 명국이 머리를 벅벅긁으며 일어났다.
『추워 죽겠는데.하릴 없이 오줌만 마려우니… 아따 가로세로 잘들 주무시는구먼.』 남이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고 나서 명국이누워 있는 사람들 사이로 방을 나왔다.길남이 소리없이 그 뒤를따랐다.밖으로 나오자마자 명국이 물었다.
『무슨 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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