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생각은…

무형 문화유산도 ‘세계화’ 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10만원권 지폐에 광개토대왕을 넣어야 한다는 네티즌의 의견이 많다. 중국 동북공정에 맞서 우리도 그에 걸맞은 인물을 우리 최고액권의 주인공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동북공정에 대한 국민의 정서를 분명히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이달 초 프랑스의 유네스코 본부에 다녀왔다. 세계무술연맹이 유네스코 산하 무형문화유산 분야 협력 비정부기구(NGO)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서였다.

세계무술연맹은 충주세계무술축제에 참가한 세계 각국의 무술단체들을 중심으로 2002년 설립된 국제민간기구다. 택견을 중심으로 세계 32개국 33개 무술단체가 소속돼 있고, 본부는 택견의 본산지인 충북 충주에 있다. 유네스코는 전통무술이 무형문화유산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으며, 일부 요건을 충족하면 순조롭게 협력 NGO 지위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매우 긍정적인 의견을 주었다. YMCA·라이온스클럽 등 기존 유네스코 NGO 단체와 동등한 국제적인 지위를 가지는 국제무술기구가 우리나라에 들어설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최근 동북공정과 궤를 같이하는 일부 국수주의적 중국 학자가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이므로 쌍영총도 중국의 것이고, 이 벽화에 나오는 무술인 택견과 그 후신으로 여겨지는 태권도 역시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참으로 어이 없지만 역사가 단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시대와 힘의 논리에 의해 ‘쓰인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 단순히 감정적으로 대응할 일은 아니다. 역사적 진실이 아닌 힘이나 상황논리에 밀려 우리의 역사·문화를 훼손당하지 않기 위해선 사회 각 분야의 적극적인 관심과 역할 분담이 절실하다. 개개의 역사적 사실을 발굴하고 입증하며 관련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일은 정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런 면에서 세계무술연맹의 유네스코 협력 NGO 지위 획득과 올해로 10돌을 맞는 충주 세계무술축제의 의미는 각별하다. 학술적 논증도 뒤따라야 하겠지만 세계인들이 택견을 한국의 전통문화로 인정하면 누구도 택견을 자기 나라의 것이라고 주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2005년 강릉단오제가 단오 명절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의 단오’를 제치고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중의 하나로 선정됐다. 명맥만 간신히 이어오는 중국과 달리 우리의 단오는 오랜 세월 민족의 생활 속에서 축제로 살아 있었기 때문이란 것이 유네스코 심사단의 설명이었다.

문화 콘텐트 시대의 최대 경쟁력은 ‘5000년 민족혼이 살아 숨쉬는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다. 이런 맥락에서 ‘무형문화유산의 세계화’는 국가적 당면 과제가 됐다. 우리 문화유산이 세계인의 유산으로 자리 잡는 것을 뜻한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가 일이 터진 후 “이건 당연히 우리 것”이라고 우겨봤자, 세계는 인정하지 않는다. 적극적인 세계화만이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켜내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세계화는 비단 경제계만의 화두가 아니다.

김종록 세계무술연맹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