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이 죽었다-미국내 일본문학 선구자 도널드킨 회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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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미국내 일본문학 연구의 원조격인 도널드 킨(72)이 최근 자서전『친숙한 조건』(On Familiar Terms)을 발표했다.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왜 일본문화에 심취하게 됐는가,그리고 친교를 가졌던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미 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아베 고보(安部公房)같은 일본문학 대가들에 얽힌이야기를 소상히 밝히고 있어 주목을 모으고 있다.
2차대전이 끝난 후 여러차례 일본을 방문,일본문학인들과 교류를 가져온 그는 외국인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일본문단에서 매우 드물게「가이진(外人)」이 아닌 같은 일본인으로 대접 받을 수 있었다.그는 이 책에서 서구에 알려진 일본의 대가 급 문인들이실생활에서는 작품속에서와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것을『예술과 현실을 분리해서 보는 일본적인 2중성의표출이 아니겠는가』고 말한다.
그가 소개하는 일본작가중 가장 독특한 인물은『타인의 얼굴』『모래의 여인』등 철학적인 우의성이 번뜩이는 소설을 많이 발표해「일본의 카프카」로 불리기도 했던 아베 고보.그의 소설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달리 그는 기술적 재능이 뛰어난 인 물이었다고 한다.여가시간이면 공작에 몰두하곤 하던 그는 나중에 자동차타이어 자동교환기를 개발,국제발명가대회에서 3등을 차지하기도 했다.킨은 가와바타 야스나리도 그의 소설에서 드러나는 섬세함과는 달리 의외로 선이 굵은 인물이었다고 지 적하고 있다.가와바타는신문사에서 연재소설 원고를 받으려고 집에까지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도 원고 쓸 생각은 않고 킨과 장시간 잡담을 나눌 정도의 강심장이었다는 것.
또 미시마 유키오는 과연 소문대로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였다고 킨은 회고한다.기억력이 뛰어나고 항상 정확한 계산아래 대화를 하는 인물이었다는 것.함께 여행을 한 적도 있었는데 뛰어난자연묘사로 유명한 미시마가 꽃이나 식물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없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킨은 회고한다.
미시마와 가와바타가 차례로 자살한 것에 대해 킨은 그것이 가와바타의 노벨상 수상(68년)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우선 가와바타는 노벨상수상으로 인해 해외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는 것에 상당한 중압감을 느꼈다는 것이 다.한편 미시마는 내심 노벨상 수상을 자신의 중요한 문학적 목표로 삼고 있었는데 가와바타의 수상으로 이것이 불가능해지자 심한 좌절감에빠졌다는 것.70년「천황제 부활」등 극우적인 구호를 외치면서 미시마가 할복이라는 극단적인 죽음을 택한 배후에는 정치적인 동기보다는 이러한 개인적인 좌절감이 더 많이 작용한 것이라고 그는 지적하고 있다.
39년 컬럼비아대학의 동양학과에 입학하면서 일본어를 공부하기시작한 도널드 킨은 자신이 동양에 관심을 가지게된 것이 30년대 대공황기에 빈곤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과 관련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나는 어딘가 멀리 도망가고 싶은 심정에서 동양학을 선택했다』고 그는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
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일어나자 미국정부는 일본어를 구사할수있는 미국인을 미국 전역에 걸쳐 수소문했고 킨도 이때 소집된 50여명중 한 사람으로 해군언어학교에 입학,일본어 및 한국어를 배웠다고 한다.
〈林載喆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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