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3(삼성·대한·교보생명) 견고한 아성 균열 생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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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변액보험 성장세가 가파르다. 2001년 7월 국내에 도입된 변액보험은 저금리와 고령화, 증시 호조에 힘입어 매년 평균 200%(수입보험료 기준) 이상의 높은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변액보험 판매액이 일반보험(전통 보장형 상품)을 추월하고 있어 이 같은 추세라면 보험시장의 판도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변액보험은 구르는 눈덩이와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규모가 커지고, 성장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변액보험을 빗대 보험업계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변액보험의 총 자산이 10조원을 돌파한 것은 2006년 1월. 이 보험이 도입된 지 불과 4년6개월 만이다. 하지만 이후 20조원을 돌파하는 데는 불과 13개월(2007년 2월)밖에 안 걸렸다. 5월 말 현재 변액보험의 총 자산은 24조1408억원으로 3개월 만에 또다시 4조원이 증가했다.

가파른 성장세로 전체 보험 상품에서 변액보험이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커지고 있다. 2003년 3월 전체 보험 자산 중 0.19%에 불과했던 변액보험 비중은 2005년 3월 1%를 돌파한 데 이어 2006년 3월 4.9%, 2007년 3월 7.74%로 매년 덩치(규모)가 1.5~2배가량 커졌다. 5월 말 현재 비중은 8.6%로 이 같은 추세라면 올 하반기에는 10% 돌파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변액보험이 ‘구르는 눈덩이’에 비유되는 것도 이처럼 성장 속도가 빠르고, 상품 비중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올 들어서는 변액보험 판매액이 일반보험을 추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업계에서는 판매 비중을 6(변액보험)대 4(일반보험)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보험시장의 킬러상품(주력상품)이 뒤바뀐 것이다.

전용석 대한생명 상품개발팀 과장은 “회사 자체적으로 변액보험이 주력 상품은 아니지만 올 들어 변액보험이 일반보험의 판매액을 뛰어넘고 있다”며 “업계 전체적으로 변액보험과 일반보험의 판매 비중은 6대 4 정도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미래에셋, PCA, 메트라이프, ING, SH&C생명 등 국내외 중소형 보험사들은 이미 오래전에 변액보험이 주력 상품화된 상태다. 미래에셋생명의 경우 2005년 12월부터 변액보험 판매 비중이 전체 50%를 뛰어넘었고, 최근에는 그 비중이 70%까지 육박하고 있다.

박시현 미래에셋생명 기획관리본부장은 “미래에셋금융그룹이 자산운용에 강한 회사로 고객들에게 인식되면서 변액보험 판매 비중이 점점 늘고 있다”며 “앞으로도 변액보험 위주의 판매 구도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변액보험이 보험시장의 주력상품으로 떠오르면서 삼성생명, 대한생명, 교보생명 등 빅3 구도의 보험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변액보험 판매에 주력해온 국내 중소형사와 외국계 보험사의 시장점유율은 증가한 데 반해 소극적이었던 빅3의 시장점유율은 하락하고 있는 것.

빅3의 시장점유율은 2004년 3월 72%에(수익보험료 기준) 달했지만 지난 3월 62.3%로 10%포인트가량 하락했다. 이에 반해 8개 외국계 보험사의 시장점유율은 같은 기간 6%포인트 상승, 19.1%를 기록했고, 11개 국내 중소형 보험사도 3.7%포인트 오른 18.6%를 차지했다.

양성문 보험개발원 동향분석팀장은 “2003년 이후 일반보험의 수입보험료는 정체상태였지만 변액보험은 매년 200% 이상 증가했다”며 “최근 몇 년간 빅3의 시장점유율이 하락한 것은 국내외 중소형사의 공격적인 영업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빅3가 변액보험 판매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변액보험 부문에서는 빅3라는 말이 무색하다. 2003년 3월 82.2%에 달했던 빅3의 변액보험 시장점유율은 지난 3월 56.7%로 추락했고, 4~5월에는 50% 선마저 무너졌다. 회사별로는 삼성생명이 18.1%로 1위, 이어 대한·교보생명이 각각 17.7%, 13.3%로 2~3위를 기록 중이다. ING, 메트라이프 등이 각각 10%, 9.2%로 빅3를 위협하고 있고, 5%대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미래에셋, PCA생명 등도 변액보험 판매에 고삐를 죄며 선두그룹을 쫓고 있는 상태다.

시장점유율 하락으로 위기감을 느낀 빅3도 최근 변액보험 판매 전략을 수정하고 공격적인 영업을 준비하고 있다. 보험사 중 변액보험 판매의 가장 소극적이었던 삼성생명이 최근 “변액연금 등 변액보험 영업을 강화하겠다”고 선포한 것도 이 같은 위기감 때문이다.

변액보험이 보험시장의 주력상품으로 떠오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저금리와 고령화의 영향이 크다. 저금리와 고령화로 은퇴 또는 노후대비 자금 마련이 중요해지면서 단순히 계약된 보험금만 지급받는 일반보험보다는 투자수익도 얻을 수 있는 변액보험으로 시중자금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품 간 ‘머니무브(Money Move)’ 현상은 은행권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은행 예금(수신)은 22조원이 감소했으며 이 중 80% 이상이 펀드나 증권사의 CMA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경희 보험개발원 재무연구팀 선임연구원은 “저금리와 고령화로 저축과 보장자산 중심이었던 가계의 포트폴리오가 급격히 투자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보험시장에서도 기존 보장성과 함께 투자성이 가미된 변액보험으로 상당한 자금이 이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증시 호조도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이다. 변액보험은 실적배당형 상품인 만큼 증시와 연관성이 깊다. 최근 3년간 변액보험 시장 규모가 매년 배로 늘어난 것도 증시가 좋았기 때문이다. 이 기간 종합주가지수는 250% 이상 올랐다. 이 선임연구원은 “증시는 변액보험 판매의 바로미터가 되고 있다”며 “변액보험이 보험시장의 주력상품으로 떠오른 것도 최근 몇 년간 증시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험업계에서는 변액보험의 초강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근 들어 금리가 오르고 있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인데다 증시 호조로 투자자산 선호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향후 5년 내에 변액보험 시장규모가 일반보험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바꿔 말하면 변액보험을 선점하는 보험사가 향후 보험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보다 먼저 변액보험을 내놓았던 네덜란드,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의 경우 변액보험이 전체 보험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변액보험 전문 보험사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상태다.

박정훈 ING자산운용 팀장은 “네덜란드,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은 보험시장의 주류가 변액보험”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우도 여타 선진국과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만큼 변액보험이 일반보험보다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강창규 미래에셋생명 상품개발팀장은 “시기를 못 박을 수는 없지만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변액보험 시장이 일반보험보다 커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현재 종신형 상품에만 제한돼 있는 변액보험이 제도적으로 보완되면 성장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반면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선진국의 경우 소비자들의 투자 성향이 강한 데다 증시가 장기간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하며 변액보험 시장도 커졌지만 국내 증시는 변동성이 크고 투자 손실에 대한 고객 민감도도 높기 때문이다. 전용석 과장은 “장기적으로 변액보험 비중이 전체 보험시장에서 30~40%가량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전제 조건은 증시가 안정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용어설명

변액보험 변액보험은 보험사가 고객이 낸 보험료의 일부를 펀드에 투자해 운용 실적에 따라 보험금을 얹어 주는 ‘실적 배당형’ 상품을 말한다. 일반보험은 사망 또는 특정기간이 지나면 계약에 따라 보장된 보험금을 받을 수 있지만, 변액보험은 보험료 운용 수익에 따라 보험금이 달라질 수 있다. 저금리와 고령화로 은퇴 및 노후 대비 자금 마련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보장과 함께 투자성이 가미된 변액보험이 인기를 끌고 있다.

수입보험료 보험가입자가 낸 총 보험료를 말하며 일반 제조업체의 매출액에 해당한다.

임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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