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사가 쓰는 性칼럼] 남편이 두려운 아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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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호 14면

“제발 우리 남편 좀 말려주세요!”

쫓기는 사람처럼 필자의 진료실로 뛰어들어온 40대 여성 C씨는 주로 섹스리스를 고민하는 대부분의 환자와 정반대의 문제를 호소했다.

“내 남편은 시도 때도 없이 덤벼서 너무 힘들어요.”

C씨를 뒤쫓아 진료실로 들어온 남편은 씩씩거리면서 항변했다.

“아니, 내가 건강한 것도 죄야? 섹스를 좀 자주 하는 것도 문제냐구. 당신은 날 사랑

하지 않아서 거부하는 거야!”
C씨의 남편은 오히려 아내가 성 기피증에 빠졌다면서 맹비난했다.

“지금 저는 남편의 도구일 뿐이에요. 매일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화내고….”

성욕이 좀 과하다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욕구 충족에만 몰두하는 것은 위험하다.

왜 그러한 행동을 하는지 분석하고 심리치료를 반복하던 어느 날 C씨의 남편이 고개를 떨어뜨리며 입을 열었다.

“아내가 날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까 봐, 나를 떠날까 봐 늘 두려웠어요.”

그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헤어져 살았다. 아내가 어린 시절의 어머니처럼 떠나버릴까 봐 섹스로 묶어두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오히려 아내로 하여금 그를 거부하게 만들 뿐이었다. 아내의 컨디션은 고려하지 않고 거칠게 몰아친 탓에 C씨는 심한 성교통까지 겪고 있었다.

섹스 중독증은 지나치게 섹스에 집착해 일상생활에 문제를 일으킬 정도로 병적인 상태를 말한다. 알코올 중독이나 도박 중독의 심리상태와 유사성이 있다. 강박증, 조울증·우울증, 불안증에서도 섹스중독이 나타날 수 있다. 노년의 경우 치매 초기단계에서 섹스 충동을 조절하지 못할 때도 있다. 흔하진 않지만 남성호르몬이 과도하거나 뇌에 이상이 있어도 섹스 중독증이 나타난다.

C씨의 남편처럼 아내를 대상으로 섹스 중독 현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주위엔 외도나 성매매 등 배우자 이외의 성행위에 몰두하는 사람이 더 많다. 게다가 죄책감도 전혀 느끼지 않는다. 배우자의 기분이나 상태에 아랑곳없이 자신만의 만족을 위해 일방적인 섹스를 하는 사람들도 문제다. 배우자가 거부하는데도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는 섹스는 엄밀히 말해 성폭력이다.

정서적으로 메마른 기계적인 섹스도 문제다. 물론 섹스를 할 때마다 항상 상대를 지고지순하게 사랑하는 상태가 되기는 힘들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대에게 자신의 메마른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문제다. 상대의 몸과 마음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 하는 것을 어찌 건강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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