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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 바우만 같은 기적 바랄 뿐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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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21일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13층 항암병동에서 이지혜양(右)을 아버지가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재미동포 2세인 이양은 한국을 좀 더 알고 싶어 국내 기업에서 인턴십을 밟던 중 쓰러져 악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사진=최승식 기자]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13층 항암병동 무균실. 이성록(62.미국 LA.응급실전문의)씨는 찰랑대던 머리칼을 다 잃고 모자를 뒤집어쓴 채 앉아 있는 딸 지혜(23.미국이름 소냐)씨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씨는 "국내외 골수(조혈모세포)은행을 모두 뒤졌지만 우리 아이랑 일치하는 유전자형을 가진 사람이 없대요. 정말 우리 아이를 살릴 길이 없을까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악성백혈병 진단을 받은 지혜씨는 항암치료를 받고 있지만 재발 가능성이 높아 골수(조혈모세포) 이식이 필수다.

지혜씨의 경우뿐 아니라 많은 백혈병 환자들이 유전자형이 맞는 골수 기증자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골수 기증 지원자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성덕 바우만 같은 기적 나타나길…"=재미 동포 2세인 지혜씨의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다. 지난해 프린스턴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홀로 한국행을 택한 것도 자신의 뿌리를 좀더 알아야만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김앤장법률사무소에서 인턴십 과정을 밟고 있던 지혜씨는 몇 달 전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피곤함에 시달렸다. 1년 과정이 끝나가던 6월 12일, 지혜씨는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진단 결과는 악성 백혈병. 지혜씨는 폐출혈에 이은 중풍.황달 등 온갖 합병증이 찾아왔다. 합병증을 치료하느라 항암치료는 지난 주말에야 시작했다. 항암치료는 영구적인 치유책이 아니다. 유전자형이 맞는 골수 기증자를 찾지 못하면 지혜씨의 생명은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다. 아버지 이씨는 "성덕 바우만씨 때와 같은 기적이 우리 딸에게도 나타나기만 빌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수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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