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소설>정찬 "별들의 냄새".최수철 "내정신의그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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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제야 겨우 민주화를 이루나보다 하고 문민정부의 길목에서 채숨도 크게 들이 쉬기전에 또 부닥쳐오는 개방화의 물결.
기술이니 상품이니 소비문화란 이제 투정하고 나무랄 틈새도 주지않고 우리를 다그친다.어디로 가라는 것인가.무한경쟁이란 단어가 두렵게 느껴지다 그것도 어느덧 낯익어 그속에 꼴깍 삼켜질까겁이 난다.
그래서 소설가는 너무도 낯익어 무디어진 우리 감각을 깨뜨려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작가세계』봄호에 실린 두편의 작품들은 이 낯설게 만드는 방식에서 흥미를 끈다.
정찬씨의「별들의 냄새」는 정상에 비정상을 접목시켜 그 정상적인 것을 낯설게 만든다.기술문명 속에 사는 성공한 회사간부는 정신병자를 보고 우월감을 느낀다.그러나 자연의 냄새를 맡을 수있기에 능률성을 잃고 직장에서 쫓겨난 어느 환자 와 접촉을 통해 자신이 살고있는 세계가 거대한 병동은 아닐까 되돌아 본다.
최수철씨의「내 정신의 그믐」은 상품과 광고라는 소비사회에 함몰된 어느 회사원의 의식을 슬로비디오를 찍듯 천천히 찍는다.그러고는 성급히 주어진 의미를 받아들이는 독서행위를 늦추게 한다.읽기도 힘들테고 손쉬운 감동도 피할테니 독자는 소비자로서가 아니라 생산자로서 읽으라는 것이다.
끈질기게 실험을 물고늘어지는 최씨의 소설은 갖가지 복합적인 기교로 독자를 탁탁 숨막히게 하는게 매력이다.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와해시켜 글쓰는 이가 읽는 이로 되고,읽는 이가 쓰는 이로 바뀌는 경우도 있지만 그의 소설은 대부분 타인 과의 진정한관계를 되찾기 위해 자아를 해체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는 또 어떤 전략으로 책읽기를 방해하려는가.
주인공은 30대 중반의 광고회사 대리다.그는 회사생활 4년반만에 자신에게 분노를 느끼기 시작하며 그 분노의 정체를 탐색하기 시작한다.영화화된 소설의 표지만드는 일에 휘말리며 그는 깨닫는다.기술과 상품과 규격화된 문명속에 사물이 된 자아가 자유롭게 사유하고 타인의 고통을 느낄줄 아는 자아를 압도해버린 것을. 감옥과 정신병원과 어느 낯선 시골의 창고에 갇힌 며칠의 경험을 통해 그는 종속된 진정한 자아를 구출해낸다.
소설의 묘미는 두개의 분열된 자아「나」와「그」의 엎치락뒤치락하는 싸움과「그」가 줄곧 누군가에 의해 감시당하고 조종당하는 과정을 암시와 힌트로서 보여주는 데 있다.
또 나방과 인간이 반씩 접목된 책표지 그림이 스토리를 끌어가는데,그것이 상품사회의 분열된 자아를 상징하는데 제격이라는 것이다.날지도 못하고 뛰지도 못하는 갇힌 현대인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최씨의 소설은 읽는데 끈기와 시간을 요구한다.그러기에 소비문화에 저항하는 힘을 갖는다.포스트모던적 기법으로 후기 산업사회의 병리를 진단하고 거부하는 묘미가 여기에 있다.
권택영〈문학평론가.경희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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